“택시 기사 김사복 찾고 있어요”

영화 <택시운전사>가 1,200만 관객을 동원하여 1980년 당시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무사히 태운 택시기사의 이야기가 많은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힌츠페터 기자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힌츠페터가 사망할 때까지 찾던 택시기사 김사복 씨의 행방에 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영화 택시운전사 이후 김사복 씨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 진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그 후로는 잊고 지내다 518자유공원에 가서 김사복 씨에 대한 글과 사진을 본 뒤 이 자리에 소개한다.사진과 글귀는 518자유공원에서 가져온 것이다.방문 : 2022년 1월 15일 5.18자유공원을 방문했다.

영화 개봉 사흘 만에 김사복의 아들이라는 사람의 트위터 글이 올라오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대부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 김승필은 아버지와 힌츠 페터가 함께 찍은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고 영화제작사측은 독일에 있는 힌츠 페터의 부인을 통해 그의 사진이 옳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그동안 힌트페터와 제작진이 택시조합 등을 조사했는데도 찾지 못한 이유는 김사복 씨가 일반 택시 운전사가 아닌 외국인 전용으로 허가된 호텔 택시 2대를 운영하며 직접 손님을 맞는 운전사 역할도 해왔기 때문이다. 팔래스호텔 소속 호텔택시를 운영하던 김사복씨는 주로 조선호텔에서 외신기자를 비롯한 외국인 VIP 손님을 맞았다.

김승필 씨에 따르면 이 영화에는 실제와 다른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영화에서 보면 만섭은 어린 딸이 있어 부인과 사별한 홀아비로 셋집에 사는 모습인데 김사복 씨는 당시 22세의 장남(김승필 씨)과 20세의 둘째 아들, 그리고 아내를 둔 가장으로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힌츠페터 씨와는 5·18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광주 방문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다. 실제로 김사복 씨는 택시 운전사인 만담과 달리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외신기자와 일해 영화처럼 동료 손님을 빼앗은 게 아니라 10년 전인 1970년대 초부터 거래했다.


김사복은 호텔택시 운영자: 김사복의 고향은 함경남도 원산시 신풍리에 남한에 온 실향민이다. 대한민국 육군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결혼 후 원단공장을 하다 실패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개인택시를 시작했으며 이후 회현동 팔래스호텔에서 호텔택시 운영권을 취득했다.
힌츠페터와 5월 광주 2회 진입: 1980년 5월 19일 김사복 씨는 김포공항에서 독일 기자들과 만나 인사하고 당시 한국 상황을 설명했다. 20일 독일 기자들과 함께 광주에 침입?그는 21일 낮 광주에서 1차 탈출한 뒤 밤 11시 서울로 복귀했다. 다음 날인 22일 힌츠페터 씨는 일본으로 건너가 먼저 촬영한 필름을 건네주고 돌아왔고 김사복 씨는 힌츠페터 씨와 함께 23일 오전 10시 30분 광주에 다시 들어간 뒤 27일까지 광주에 머물렀다.

광주 울분으로 지병 악화:김사복 씨는 광주에 다녀온 뒤 당시 22세였던 아들에게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설명하며 민족끼리를 어떻게 그렇게 죽이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간경화를 앓던 김사복 씨는 완치된 뒤 광주의 참상을 보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해 4년 뒤인 1984년 12월 19일 간암으로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6년 1월 15일 힌츠페터는 독일에서 투병 끝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같은 해 5월 “죽으면 광주에 묻어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손톱과 머리카락 일부가 무등산 분청사기함에 봉안돼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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