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쓰려고 했는데 사기가 바빠서 이제야 쓴다.
사실 그때는 정말 절박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이도 건강해지고 시간도 지나면 기억도 희미해지고 초심을 잃었다.참으로 교활한 인간…
다소 두서가 없고 굉장히 긴 글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심한 비염과 축농증으로 고통받는 아이를 둔 초보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훗날 내 아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양약의 구멍(?) 속에서 나빠져가는 아들의 건강을 다시 되찾아준 영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다.
우리 아들의 지금 나이는 9세. (2020년 11월) 심한 비염과 축농증으로 항생제를 달고 산 것은 3~5세 3년, 물론 처음부터가 아니라 점점 상태가 나빠져 5세 말에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다섯 살 언젠가 “엄마, 나 왜 매일 약을 먹어야 하지?” 하던 아이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항생제가 더 이상 듣지 않아 충격을 받은 뒤 병원과 양약을 끊고 5세 후반부터 8세 후반까지 정확히 3년 홈케어로 완치(우선 완치라고 표현함), 그리고 1년이 지났다.
3년 동안 매일 나왔던 노란 코가 안 나온 게 작년 하반기쯤이니까 딱 1년이네.
흔한 비염과 축농증보다 우리 아이의 축농증은 상당히 심했다. 콧물과 비염으로 출발해 여지없이 노란 농사가 부비강에 가득 차는 축농증이 되는 코스가 늘 반복됐다.불행 중 다행인지 중이염은 가끔 왔지만 고막이 터질 정도로 심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일단 노란 농사가 코 밖으로 흘러나오면 다행이지만 부비강에 차 물리적으로 빼주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았다.코로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어릴 때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기계로 노란 코를 뽑고 약 먹기를 반복했다.
의사들은 콧속이 붓고 코가 꽉 차서 노란 코가 목 뒤로 넘어간다고 알리고 약 처방을 해준 것 말고는 알려주지 않았으니까.나도 아프면 병원가는게 당연하고 약먹는게 나을것같아서.그래도 항생제는 좋지 않아 항생제를 잘 먹지 않는 이비인후과를 차로 찾기도 했다.
3년간 이 과정이 반복돼 5세에는 항생제를 바르고 살아왔다.한달에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0일..9월쯤 약을 끊은 기억이 있다.
축농증만 달고 산 것은 아니다. 면역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온갖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수시로 고열과 응급실에도 자주 갔고 입원도 여러 차례 했다.물론 해열제도 많이 먹고 맞았다.그리고 우리 아이는 열이 나면 기본이 39도, 최고점은 귀체온계로 40.3도까지 붙여봤다.
노란 코막힘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3년간 나왔다면 믿을 수 있을까.나왔다는 것은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매일 코세척기로 농사를 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양약을 그만두고 매일 코 세척으로 농사를 뺀 것만 3년이고, 그 전에 병원을 다니면서 기계로 농사를 뺀 기간은 3년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물론 병원에서 코농사를 뺀 게 매일은 아니다.병원 갈 때만 뺏을 테니까.
나는 회사를 다니고 아이는 유치원에 가야 해서 아침 저녁에만 매일 코 세척으로 농사를 지어줬다.주말에는 하루에 몇 번씩 빼줬다. 그때마다 누런 농담이 겹겹이 빠져 나왔다.
병원에 가지 않는 3년 동안 비강의 양은 그날그날 달랐다.항상 한두 덩어리라고 하면 감기에 걸려서 조금 심할 때는 양이 많고 더 빨리 채워지고 색깔도 녹색으로 더 끈적끈적, 그래도 몸이 좋을 때는 색깔도 노랗고 양도 줄었다. 이를 3년간 매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노란 코는 아이가 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자 정화 작용이었다
아침에 농사를 빼고 개운한 코로 등원하면 서서히 농사가 다시 올라왔을 것이고, 내가 퇴근해서 다시 농사를 뽑을 때까지 답답하게 숨쉬었던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코가 막히면 숨도 못 쉬고 머리도 멍하니 당연히 식욕이 없고 항생제를 먹으면 흔히 위장에 좋은 균도 죽이기 때문에 위장 기능이 떨어진다고 한다.3년 동안 그렇게 지냈으니 아이는 밥을 잘 먹지 않았고 면역도 계속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평소 밥도 잘 먹고 튼튼한 아이라면 비염이나 축농증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서 약을 받고 일주일 정도 먹고 쉬면 낫는다.
우리 아이도 처음에는 그랬어.그런데 반복된 항생제 처방과 식욕 부진으로 떨어진 면역은 몸이 저절로 회복되는 능력을 상실시켰을 것이다.
유전적으로도 소화기나 호흡기가 좋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아이의 아버지도 축농증 수술 경험이 있고, 나도 어렸을 때 축농증으로 코가 막혀 머리가 멍했던 기억이 생생하고, 지금도 심한 감기에 걸리면 아이의 아버지도 나도 어김없이 부비강에 농담이 가득 찬다.둘 다 소화기도 나빠서 종종 위장병이 생긴다.
다섯 살 여름쯤인가 코가 심상치 않았을 때 ‘까칠한 연희씨’라는 사람이 파는 한방차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그때는 한번 몰래 찾아보고 그런 줄 알고 지나갔다.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쯤 항생제가 더 이상 듣지 않아 나는 충격에 빠졌다.돌이켜보면 정말 바보 같은 엄마였다.
먼저 연하는 한의원에 갔는데 맥을 짚었더니 얘는 지금 한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며 가루약만 처방해줬다.가루약을 열흘 정도 먹고 다시 오라고 했다. 일단 먹였지만 코는 점점 심해져서 한의원은 안 된다며 그만두고 잊고 있던 ‘까칠한 연희씨’가 생각나서 그분의 카스를 찾으러 들어갔고, 나는 거기서 너무 충격적인 글을 보게 됐다.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지도 몰라.다만 내가 무지하고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먼저 열이 나는 것, 콧물, 노란 코가 나는 이유를 단순히 감기에 걸려서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모든 증상은 몸이 바이러스를 쫓고 있다, 그래서 낫기 위한 과정이라는 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아프다는 것을 아는 증상이 몸이 살기 위해 노력하는 면역반응이라는 것은 평소 내가 알고 믿었던 상식과 정반대였다.
열이 나는 것은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면역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해 바이러스를 몰아내기 위한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고온에서 죽는다고 한다.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몸은 열을 내고 있는데 그 열을 해열제로 무조건 낮추는 것은 몸이 열심히 바이러스를 쫓아내기 위해 백혈구가 총력을 기울여 작업 중인데 거기에 찬물을 붓는 꼴이라는 것이다.
즉 열이 없으면 병이 낫지 않는다고 했다.열은 몸에 해롭고 무조건 낮춰야 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저는 그 이후로 아이의 고열에도 한 번도 해열제를 먹인 적이 없다, 그러니까 5살부터 지금까지.잠깐 열이 날 때 아이를 보면서 그래, 우리 아들은 열심히 바이러스를 쫓아내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어.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자며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이제야 이렇게 담담하게 써가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콧물과 노란색의 농도도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라고 한다.
양약은 이러한 증상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는 것으로 건강한 면역을 가진 아이라면 양약으로 증상을 억제한 후(아이가 불편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자가면역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우리 아이처럼 유전적으로 소화 기능이 좋지 않아 장기간 비염과 축농증을 앓고 있으며 지속적인 약물로 면역이 없는 아이에게는 점점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증상을 억제하는 약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낫도록 돕는 것을 먹여야 하며,
노란 코가 몸을 보호하기 위한 정상적인 반응이라면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일단 호흡이 힘들기 때문에 생성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면 되고 몸에 좋은 것을 먹여 면역을 높이면 노란 코는 언젠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전에도 사용했지만 노란 코는 실제로 양약을 그만두고 3년째 매일 나왔고 8세 하반기부터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치유과정 3년..
꼼꼼한 연희씨는 아이들이 자주 앓는 호흡기, 소화기 질환에 도움이 되는 한방차를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처음부터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본인의 세 자녀를 위해 만든 차가 효능이 너무 좋아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차 재료도 전국을 돌며 직접 골라 손질한다.단순히 한방차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차를 만드는 사람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일이다.나는 연희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항생제가 먹히지 않았을 때 한의원이나 민간요법에 눈을 돌리지 않고 대학병원에 갔다면 우리 아이는 어떤 처방을 받게 되었을까.
나에게 연희씨는 우리 아이 생명의 은인이다. 왜 열이 나고, 왜 콧물이 나고, 왜 노란 코가 나는지 알려주는 의사는 어디에도 없었다.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은 연희 씨는 하나하나 알려줬고 나는 연희 씨가 알려준 대로 3년 동안 아이가 아플 때마다 처치했고 지금 아이는 아주 건강하다.
감기부터 백혈병까지라는 책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몸속의 모든 세포가 바뀌려면 1년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사실은 뿌연데 어쨌든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아이를 약으로 아프게 한 게 3년이니까 3년은 약 없이 노력하는 게 낫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노란 코가 매일 나오니까 왜 도대체 이렇게 매일 나오는지 안 나오는 날이 오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중간에 힘이 빠지는 날도 많았다.
실제로 완치까지 3년이 걸렸고, 양약을 그만두고 연희 씨의 차량과 민간요법으로 관리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부터 눈에 띄게 아이가 건강해지는 것이 보였다.글로만 보고 이야기로만 듣던 것이 우리 아이의 임상(?) 결과로 나타나니 그저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3년간 한 건 연희 씨가 만든 차(감배차 콧구멍차)를 매일 두세 번 마시게 했고 노란 코는 코세척기로 매일 빼줬다.(“나잘 프레쉬”라는 코세척기를 사용하였다. 지금도 우리집 필수품) 이것에 익숙해지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열이 날 때는 몸은 따뜻하게 하고(너무 꽉 감싸지 않고 가볍게 덮어준) 머리만 시원하게 하고 정상 면역작용을 억제하는 해열제가 아니라 비타민C가 가득한 연모차를 마시게 했다.
비타민씨는 백혈구 밥이라고 한다. 몸이 열을 내 백혈구가 활동하기 쉽도록 혈관을 확장시키면 백혈구 속 면역세포가 바이러스와 싸울 때 백혈구의 밥인 비타민 씨앗을 먹여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40도까지 열이 오를 때는 제가 열심히 해서
꼭 쓰려고 했는데 사기가 바빠서 이제야 쓴다.
사실 그때는 정말 절박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이도 건강해지고 시간도 지나면 기억도 희미해지고 초심을 잃었다.참으로 교활한 인간…
다소 두서가 없고 굉장히 긴 글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심한 비염과 축농증으로 고통받는 아이를 둔 초보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훗날 내 아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양약의 구멍(?) 속에서 나빠져가는 아들의 건강을 다시 되찾아준 영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다.
우리 아들의 지금 나이는 9세. (2020년 11월) 심한 비염과 축농증으로 항생제를 달고 산 것은 3~5세 3년, 물론 처음부터가 아니라 점점 상태가 나빠져 5세 말에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다섯 살 언젠가 “엄마, 나 왜 매일 약을 먹어야 하지?” 하던 아이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항생제가 더 이상 듣지 않아 충격을 받은 뒤 병원과 양약을 끊고 5세 후반부터 8세 후반까지 정확히 3년 홈케어로 완치(우선 완치라고 표현함), 그리고 1년이 지났다.
3년 동안 매일 나왔던 노란 코가 안 나온 게 작년 하반기쯤이니까 딱 1년이네.
흔한 비염과 축농증보다 우리 아이의 축농증은 상당히 심했다. 콧물과 비염으로 출발해 여지없이 노란 농사가 부비강에 가득 차는 축농증이 되는 코스가 늘 반복됐다.불행 중 다행인지 중이염은 가끔 왔지만 고막이 터질 정도로 심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일단 노란 농사가 코 밖으로 흘러나오면 다행이지만 부비강에 차 물리적으로 빼주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았다.코로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어릴 때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기계로 노란 코를 뽑고 약 먹기를 반복했다.
의사들은 콧속이 붓고 코가 꽉 차서 노란 코가 목 뒤로 넘어간다고 알리고 약 처방을 해준 것 말고는 알려주지 않았으니까.나도 아프면 병원가는게 당연하고 약먹는게 나을것같아서.그래도 항생제는 좋지 않아 항생제를 잘 먹지 않는 이비인후과를 차로 찾기도 했다.
3년간 이 과정이 반복돼 5세에는 항생제를 바르고 살아왔다.한달에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0일..9월쯤 약을 끊은 기억이 있다.
축농증만 달고 산 것은 아니다. 면역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온갖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수시로 고열과 응급실에도 자주 갔고 입원도 여러 차례 했다.물론 해열제도 많이 먹고 맞았다.그리고 우리 아이는 열이 나면 기본이 39도, 최고점은 귀체온계로 40.3도까지 붙여봤다.
노란 코막힘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3년간 나왔다면 믿을 수 있을까.나왔다는 것은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매일 코세척기로 농사를 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양약을 그만두고 매일 코 세척으로 농사를 뺀 것만 3년이고, 그 전에 병원을 다니면서 기계로 농사를 뺀 기간은 3년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물론 병원에서 코농사를 뺀 게 매일은 아니다.병원 갈 때만 뺏을 테니까.
나는 회사를 다니고 아이는 유치원에 가야 해서 아침 저녁에만 매일 코 세척으로 농사를 지어줬다.주말에는 하루에 몇 번씩 빼줬다. 그때마다 누런 농담이 겹겹이 빠져 나왔다.
병원에 가지 않는 3년 동안 비강의 양은 그날그날 달랐다.항상 한두 덩어리라고 하면 감기에 걸려서 조금 심할 때는 양이 많고 더 빨리 채워지고 색깔도 녹색으로 더 끈적끈적, 그래도 몸이 좋을 때는 색깔도 노랗고 양도 줄었다. 이를 3년간 매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노란 코는 아이가 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자 정화 작용이었다
아침에 농사를 빼고 개운한 코로 등원하면 서서히 농사가 다시 올라왔을 것이고, 내가 퇴근해서 다시 농사를 뽑을 때까지 답답하게 숨쉬었던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코가 막히면 숨도 못 쉬고 머리도 멍하니 당연히 식욕이 없고 항생제를 먹으면 흔히 위장에 좋은 균도 죽이기 때문에 위장 기능이 떨어진다고 한다.3년 동안 그렇게 지냈으니 아이는 밥을 잘 먹지 않았고 면역도 계속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평소 밥도 잘 먹고 튼튼한 아이라면 비염이나 축농증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서 약을 받고 일주일 정도 먹고 쉬면 낫는다.
우리 아이도 처음에는 그랬어.그런데 반복된 항생제 처방과 식욕 부진으로 떨어진 면역은 몸이 저절로 회복되는 능력을 상실시켰을 것이다.
유전적으로도 소화기나 호흡기가 좋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아이의 아버지도 축농증 수술 경험이 있고, 나도 어렸을 때 축농증으로 코가 막혀 머리가 멍했던 기억이 생생하고, 지금도 심한 감기에 걸리면 아이의 아버지도 나도 어김없이 부비강에 농담이 가득 찬다.둘 다 소화기도 나빠서 종종 위장병이 생긴다.
다섯 살 여름쯤인가 코가 심상치 않았을 때 ‘까칠한 연희씨’라는 사람이 파는 한방차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그때는 한번 몰래 찾아보고 그런 줄 알고 지나갔다.그런데 여름이 지나고 가을쯤 항생제가 더 이상 듣지 않아 나는 충격에 빠졌다.돌이켜보면 정말 바보 같은 엄마였다.
먼저 연하는 한의원에 갔는데 맥을 짚었더니 얘는 지금 한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며 가루약만 처방해줬다.가루약을 열흘 정도 먹고 다시 오라고 했다. 일단 먹였지만 코는 점점 심해져서 한의원은 안 된다며 그만두고 잊고 있던 ‘까칠한 연희씨’가 생각나서 그분의 카스를 찾으러 들어갔고, 나는 거기서 너무 충격적인 글을 보게 됐다.
사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지도 몰라.다만 내가 무지하고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먼저 열이 나는 것, 콧물, 노란 코가 나는 이유를 단순히 감기에 걸려서라고 생각했는데요.
그 모든 증상은 몸이 바이러스를 쫓고 있다, 그래서 낫기 위한 과정이라는 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아프다는 것을 아는 증상이 몸이 살기 위해 노력하는 면역반응이라는 것은 평소 내가 알고 믿었던 상식과 정반대였다.
열이 나는 것은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면역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해 바이러스를 몰아내기 위한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고온에서 죽는다고 한다.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몸은 열을 내고 있는데 그 열을 해열제로 무조건 낮추는 것은 몸이 열심히 바이러스를 쫓아내기 위해 백혈구가 총력을 기울여 작업 중인데 거기에 찬물을 붓는 꼴이라는 것이다.
즉 열이 없으면 병이 낫지 않는다고 했다.열은 몸에 해롭고 무조건 낮춰야 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저는 그 이후로 아이의 고열에도 한 번도 해열제를 먹인 적이 없다, 그러니까 5살부터 지금까지.잠깐 열이 날 때 아이를 보면서 그래, 우리 아들은 열심히 바이러스를 쫓아내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어.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자며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이제야 이렇게 담담하게 써가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콧물과 노란색의 농도도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라고 한다.
양약은 이러한 증상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는 것으로 건강한 면역을 가진 아이라면 양약으로 증상을 억제한 후(아이가 불편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자가면역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우리 아이처럼 유전적으로 소화 기능이 좋지 않아 장기간 비염과 축농증을 앓고 있으며 지속적인 약물로 면역이 없는 아이에게는 점점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증상을 억제하는 약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낫도록 돕는 것을 먹여야 하며,
노란 코가 몸을 보호하기 위한 정상적인 반응이라면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일단 호흡이 힘들기 때문에 생성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면 되고 몸에 좋은 것을 먹여 면역을 높이면 노란 코는 언젠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전에도 사용했지만 노란 코는 실제로 양약을 그만두고 3년째 매일 나왔고 8세 하반기부터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치유과정 3년..
꼼꼼한 연희씨는 아이들이 자주 앓는 호흡기, 소화기 질환에 도움이 되는 한방차를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처음부터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본인의 세 자녀를 위해 만든 차가 효능이 너무 좋아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차 재료도 전국을 돌며 직접 골라 손질한다.단순히 한방차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차를 만드는 사람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일이다.나는 연희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항생제가 먹히지 않았을 때 한의원이나 민간요법에 눈을 돌리지 않고 대학병원에 갔다면 우리 아이는 어떤 처방을 받게 되었을까.
나에게 연희씨는 우리 아이 생명의 은인이다. 왜 열이 나고, 왜 콧물이 나고, 왜 노란 코가 나는지 알려주는 의사는 어디에도 없었다.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은 연희 씨는 하나하나 알려줬고 나는 연희 씨가 알려준 대로 3년 동안 아이가 아플 때마다 처치했고 지금 아이는 아주 건강하다.
감기부터 백혈병까지라는 책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몸속의 모든 세포가 바뀌려면 1년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사실은 뿌연데 어쨌든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아이를 약으로 아프게 한 게 3년이니까 3년은 약 없이 노력하는 게 낫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노란 코가 매일 나오니까 왜 도대체 이렇게 매일 나오는지 안 나오는 날이 오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중간에 힘이 빠지는 날도 많았다.
실제로 완치까지 3년이 걸렸고, 양약을 그만두고 연희 씨의 차량과 민간요법으로 관리한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부터 눈에 띄게 아이가 건강해지는 것이 보였다.글로만 보고 이야기로만 듣던 것이 우리 아이의 임상(?) 결과로 나타나니 그저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3년간 한 건 연희 씨가 만든 차(감배차 콧구멍차)를 매일 두세 번 마시게 했고 노란 코는 코세척기로 매일 빼줬다.(“나잘 프레쉬”라는 코세척기를 사용하였다. 지금도 우리집 필수품) 이것에 익숙해지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열이 날 때는 몸은 따뜻하게 하고(너무 꽉 감싸지 않고 가볍게 덮어준) 머리만 시원하게 하고 정상 면역작용을 억제하는 해열제가 아니라 비타민C가 가득한 연모차를 마시게 했다.
비타민씨는 백혈구 밥이라고 한다. 몸이 열을 내 백혈구가 활동하기 쉽도록 혈관을 확장시키면 백혈구 속 면역세포가 바이러스와 싸울 때 백혈구의 밥인 비타민 씨앗을 먹여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40도까지 열이 오를 때는 제가 열심히 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