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빙의문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ver
w. 홍니
” 오빠 나한테 말 못할 거 있지?
” …. “
누가 봐도 할 말이 있는 표정이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내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놀라는 걸 보면 분명 내게 숨기는 게 있다는 거다.
” 무슨 말을 해봐.
” 정말로 말하는 거야?”
” 응.
해야 할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주말부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형 회사가 새로 제2공장을 세웠는데 그곳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을 본사에서 파견하면 파견 대상자 중 한 명이 자신이라고 한다.
” 꼭 오빠가 가야해?”
” 나만큼 그 부분에 전문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를 대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능력 좋은 남편을 두고 좋아해야 하는데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 주말부부라니 조금 섭섭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나도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고, 이만큼의 대우와 월급을 주는 곳은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만두고 형을 따라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주말부부를 해야 한다는 것.
” 주말에는 꼭 와야겠다.알았지?”
” 금요일에 퇴근하고 바로 올게.
” 푹 쉬고 토요일에 오면 되는데 무슨 금요일부터 와서, 말이라도 고마워”
”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서 그래.
그렇게 서로를 터치하지 않고 존중하기로 한 우리는 주말 부부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 안녕하세요.
” 오늘 메뉴는 뭐야? “
” 집 앞에 새로 생긴 죽집이 있어서 거기 사왔어.
” 나는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왜 죽을 먹지? 어디 아프니?
주말만 보면 외롭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걱정은 괜한 걱정에 불과했다.항상 퇴근하면 영상통화를 걸어와 함께 저녁 먹는 형 덕분에 따로 살고 있지만 늘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은 속이 안 좋아서 죽을 사왔다는 형의 말과 오늘따라 행동이 느려 보이는 모습에 어디가 아플지 걱정이 됐다.
” 바빠서 점심을 급하게 먹었더니 체한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 약은 먹었어? 회사가 하도 허니지 얼마나 시키고 있어. 우리 형 몸이 상할 것 같아.
” 내가 건강을 빼면 시체잖아.곧 나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몸조심하고 일하고 있다.
얼마나 회사에서 일을 시키는지 망하지 않는 튼튼한 회사지만 완전히 망해버려 주말부부를 마무리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 다녀왔습니다.”
” 오빠!! 뭐야. 푹 쉬었다 오라고 했는데 이번주는 왜 금요일에 왔어?”
주말은 보증이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다른 일이 없으면 우리는 약속처럼 주말에 꼭 붙어 있을 것이다
가끔 형이 토요일이 아닌 금요일 퇴근 후 밤에 집에 갈 때면 너무 기뻐서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오빠에게 달려가 안기곤 했다.
” 그래서 싫어?나 그냥 내려갈까? “
” 아니야, 너무 좋아오빠 피곤할 것 같은데 졸음운전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 졸려도 휴게소에서 10분만 자면 괜찮아.
오랜만에 오빠와 야식을 먹게 되었다.술도 잘 안 마신 사람이 웬일인지 먼저 술 마시자는 얘기를 꺼냈다.저는 술을 즐기는 편이었기 때문에 오빠의 말이 너무 기뻤다.
” 술 마실 때는 어떤 안주가 제일 좋아? “
” 나? 목태 좋아하는거 알지?잊었어? 오빠가 나 목태 좋아한다고 2박스나 사주고 그걸 다 먹으면 알코올 중독자가 될 줄 알았어.
” 그랬구나.
” 그랬다는 거 기억 안 나?다른 사람에게 주기 아까워서 다 먹었는데 마누라 술독에 빠질 뻔했는데 모른 척이라니.
전혀 생각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의 연기자가 되려고 한 적이 있는 대니 연기를 너무 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핑퐁
” 누굴까?
토요일 오전 누군가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오는 사람이 없는데 뭘까 해서 확인해 보니 형이었다.
” 그냥 들어오면 돼오늘은 왜 벨을 눌러?장난을 치고 싶냐?
장난치는 것도 참 귀여운 내 남편인 줄 알고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
” 비밀번호를 찍고 들어오면 돼.현관까지 배웅하러 오길 바랬어. “
문이 천천히 열리고 형이 천천히 들어왔다.다리가 왜 이렇게 느린지 조금 어렴풋해 보이는 눈빛에 얼마나 피곤하면 저렇게 될까 싶어도 힘들지만 최대한 밝게 웃어봤다.
” 아~ 무거워 형이 마른 편이라도 이렇게 갑자기 안기면 너무 무거워”
아무 대답 없이 나에게 거의 의지하듯 안겨오지만 몸에 힘이 없어 나까지 휘청거렸다.결국 현관에서 뒤로 옮기듯 엉덩방아를 찧었고 형은 별다른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오빠..?”
마치 쓰러진 듯한 모습에 공포를 잔뜩 먹고 형을 흔들어봤다.요지부동이다.
” 119가 몇 번일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자 119 번호가 119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더듬더듬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찾자 형이 고개를 숙였다.
” 배가 고프다”
” 뭐야!!”
” 놀랐어? 남편 죽은 줄 알고? “
” 내 손이 떨려.왜 이런 장난을 쳐서 놀랐어, 정말”
천천히 자리를 비우고 일어나는 형의 등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장난치는 게 따로 있는 마음 같아서는 밥도 주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남편이니까 부엌에 들어가서 밥을 준비해본다.
” 요즘 오빠 얼굴이 너무 안좋은데 정말 어디 아픈거 아니야?나랑 병원 가볼래? “
” 이마 갔다 왔는데 어디 아픈 게 아니라 스트레스 받는데 요즘은 밥도 잘 안 먹는다.
” 밥은 잘 먹어야지.안 그래도 말랐는데 바람 불면 날아갈 거야.
예전에는 저녁이면 꼭 영상통화로 같이 밥을 먹었지만 야근이 많은 탓에 그나마 못하고 자기 전에 조금만 하는 게 마지막이었다.
” 내가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니? “
” 왜? 어제도 듣다가 다시 듣고 싶어졌어? “
” 어제도 물어봤어.
” 응 기억 안 나? “
” 생각나면 계속 듣고 싶고 궁금해서.
날씨 좋은 봄이 찾아왔지만 형은 요즘 이상하게 집에만 있으려 했다.
주말에만 붙어 있을 수 있으니 좋은 곳에 놀러 가서 추억을 남기고 싶은 나와 달리 우리만의 공간에서 단둘이 있는 걸 좋아하는 듯한 오빠 모습에 나와 꽃놀이라도 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형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는데 내 손을 쓰다듬던 형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어제 물어본 똑같은 질문을 말이다.
” 오빠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처음 보는 순간부터 결혼하고 싶었어.따뜻한 사람이라고 느꼈어.그 남자와 결혼하면 내 인생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 나도 그랬겠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 그랬겠지 뭐야?과거형?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나랑 결혼한 게 후회되는 것 같은데.
” 내가 그랬을 거라고 말했니?말이 잘못 나온 것 같아 피곤해서 잠이 안 깬다.
요즘 자꾸 말실수를 하는 것 같다고 나를 쓰다듬는 오빠 손을 쓱 깨물어 버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요즘 형은 내게서 눈길을 끌지 못한다.관찰을 하는 것 같아 신기해하는 것 같아 저 시선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사랑한다.
” 뭐야 갑자기.
” 그냥 얘기하고 싶어서 사랑한다는 말 끊지 않았을 것 같아서
” 알고있네 오빠는 연애할때도 사랑한다는 말은 거의 안했어술에 취해 비틀비틀할 때 시키면 좋겠지만 평소에는 창피하고 간지럽다고 말해주지 않았잖아.
” 역시… 더 많이 하지 그랬어표현하고 싶은 대로 할 걸 그랬어.
” 이제부터 하면 돼.우리는 벌써 1년 반 살았어.50년은 더 살아야 하니까.
” 그래 앞으로 많이 해줄게내가 정말 많이 사랑해.
형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어색하지만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계속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오빠에게 나도 사랑한다는 대답을 이어줬다.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올 줄도 모를 정도로 우리 둘은 사랑을 속삭였다.
” 어머니 왜 그러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부모님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을 해오거나 집에 오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었다는 뜻이었고, 괜히 추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통화를 시작했고, 어떻게 된 일이냐는 내 물음에 대답이 아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아가야..놀라지마라”
” 울고 있어요? 왜요 제가 지금 갈까요? “
” 재훈이가 재훈이가 ‘
그 뒷담화를 들은 나는 무슨 생각으로 택시를 탔는지 모르겠다.
‘ 교통사고로 아까 죽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눈물로 앞이 뿌옇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휴대전화에 찍힌 날짜를 봤다.
오늘이 4월 1일인지 만우절인지 그래서 엄마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까 하는데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날짜를 보여주고 있었고 몇 호실인지 말해주지 않았던 엄마를 대신 걸어온 아버지의 전화에 이 상황이 현실임을 느끼고 있었다.
” 아버지 아니죠?거짓말이죠?”
” 안에 재훈이 엄마가 있으니까 한번 들어가 봐.정신 차려야 돼. “
이 상황에서 결심하기는 힘들었다.내 남편이 죽었다니 형이 죽었어.네 병실에 들어가 흰 천을 덥고 누워 있는 상처가 있는 형의 얼굴과 울다 지쳐 멍하니 앉아 있는 어머니의 얼굴과 마주쳤고, 나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 아니잖아, 이거랑 앞으로 50년 지겹더라도 같이 하기로 했잖아.붙어있대.근데 먼저 가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화를 내기 전에 일어나라고 형을 흔들어봐도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온기 없는 몸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님을 말해줬다.
” 너마저 쓰러지면 안 되는 재훈 엄마도 겨우 버티고 있으니 마음은 아프지만 꼭 견뎌야 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 상한이 진짜가 아니면 꿈을 꾸기 때문에 쓰러져 일어나면 언제나처럼 오빠가 나를 바라보며
” 다녀왔습니다.”
” 오빠!! 뭐야. 푹 쉬었다 오라고 했는데 이번주는 왜 금요일에 왔어?”
주말은 보증이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다른 일이 없으면 우리는 약속처럼 주말에 꼭 붙어 있을 것이다
가끔 형이 토요일이 아닌 금요일 퇴근 후 밤에 집에 갈 때면 너무 기뻐서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오빠에게 달려가 안기곤 했다.
” 그래서 싫어?나 그냥 내려갈까? “
” 아니야, 너무 좋아오빠 피곤할 것 같은데 졸음운전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 졸려도 휴게소에서 10분만 자면 괜찮아.
오랜만에 오빠와 야식을 먹게 되었다.술도 잘 안 마신 사람이 웬일인지 먼저 술 마시자는 얘기를 꺼냈다.저는 술을 즐기는 편이었기 때문에 오빠의 말이 너무 기뻤다.
” 술 마실 때는 어떤 안주가 제일 좋아? “
” 나? 목태 좋아하는거 알지?잊었어? 오빠가 나 목태 좋아한다고 2박스나 사주고 그걸 다 먹으면 알코올 중독자가 될 줄 알았어.
” 그랬구나.
” 그랬다는 거 기억 안 나?다른 사람에게 주기 아까워서 다 먹었는데 마누라 술독에 빠질 뻔했는데 모른 척이라니.
전혀 생각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의 연기자가 되려고 한 적이 있는 대니 연기를 너무 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핑퐁
” 누굴까?
토요일 오전 누군가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오는 사람이 없는데 뭘까 해서 확인해 보니 형이었다.
” 그냥 들어오면 돼오늘은 왜 벨을 눌러?장난을 치고 싶냐?
장난치는 것도 참 귀여운 내 남편인 줄 알고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
” 비밀번호를 찍고 들어오면 돼.현관까지 배웅하러 오길 바랬어. “
문이 천천히 열리고 형이 천천히 들어왔다.다리가 왜 이렇게 느린지 조금 어렴풋해 보이는 눈빛에 얼마나 피곤하면 저렇게 될까 싶어도 힘들지만 최대한 밝게 웃어봤다.
” 아~ 무거워 형이 마른 편이라도 이렇게 갑자기 안기면 너무 무거워”
아무 대답 없이 나에게 거의 의지하듯 안겨오지만 몸에 힘이 없어 나까지 휘청거렸다.결국 현관에서 뒤로 옮기듯 엉덩방아를 찧었고 형은 별다른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오빠..?”
마치 쓰러진 듯한 모습에 공포를 잔뜩 먹고 형을 흔들어봤다.요지부동이다.
” 119가 몇 번일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자 119 번호가 119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더듬더듬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찾자 형이 고개를 숙였다.
” 배가 고프다”
” 뭐야!!”
” 놀랐어? 남편 죽은 줄 알고? “
” 내 손이 떨려.왜 이런 장난을 쳐서 놀랐어, 정말”
천천히 자리를 비우고 일어나는 형의 등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장난치는 게 따로 있는 마음 같아서는 밥도 주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남편이니까 부엌에 들어가서 밥을 준비해본다.
” 요즘 오빠 얼굴이 너무 안좋은데 정말 어디 아픈거 아니야?나랑 병원 가볼래? “
” 이마 갔다 왔는데 어디 아픈 게 아니라 스트레스 받는데 요즘은 밥도 잘 안 먹는다.
” 밥은 잘 먹어야지.안 그래도 말랐는데 바람 불면 날아갈 거야.
예전에는 저녁이면 꼭 영상통화로 같이 밥을 먹었지만 야근이 많은 탓에 그나마 못하고 자기 전에 조금만 하는 게 마지막이었다.
” 내가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니? “
” 왜? 어제도 듣다가 다시 듣고 싶어졌어? “
” 어제도 물어봤어.
” 응 기억 안 나? “
” 생각나면 계속 듣고 싶고 궁금해서.
날씨 좋은 봄이 찾아왔지만 형은 요즘 이상하게 집에만 있으려 했다.
주말에만 붙어 있을 수 있으니 좋은 곳에 놀러 가서 추억을 남기고 싶은 나와 달리 우리만의 공간에서 단둘이 있는 걸 좋아하는 듯한 오빠 모습에 나와 꽃놀이라도 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형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는데 내 손을 쓰다듬던 형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어제 물어본 똑같은 질문을 말이다.
” 오빠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처음 보는 순간부터 결혼하고 싶었어.따뜻한 사람이라고 느꼈어.그 남자와 결혼하면 내 인생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 나도 그랬겠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 그랬겠지 뭐야?과거형?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나랑 결혼한 게 후회되는 것 같은데.
” 내가 그랬을 거라고 말했니?말이 잘못 나온 것 같아 피곤해서 잠이 안 깬다.
요즘 자꾸 말실수를 하는 것 같다고 나를 쓰다듬는 오빠 손을 쓱 깨물어 버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요즘 형은 내게서 눈길을 끌지 못한다.관찰을 하는 것 같아 신기해하는 것 같아 저 시선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사랑한다.
” 뭐야 갑자기.
” 그냥 얘기하고 싶어서 사랑한다는 말 끊지 않았을 것 같아서
” 알고있네 오빠는 연애할때도 사랑한다는 말은 거의 안했어술에 취해 비틀비틀할 때 시키면 좋겠지만 평소에는 창피하고 간지럽다고 말해주지 않았잖아.
” 역시… 더 많이 하지 그랬어표현하고 싶은 대로 할 걸 그랬어.
” 이제부터 하면 돼.우리는 벌써 1년 반 살았어.50년은 더 살아야 하니까.
” 그래 앞으로 많이 해줄게내가 정말 많이 사랑해.
형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어색하지만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계속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오빠에게 나도 사랑한다는 대답을 이어줬다.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올 줄도 모를 정도로 우리 둘은 사랑을 속삭였다.
” 어머니 왜 그러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부모님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을 해오거나 집에 오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었다는 뜻이었고, 괜히 추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통화를 시작했고, 어떻게 된 일이냐는 내 물음에 대답이 아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아가야..놀라지마라”
” 울고 있어요? 왜요 제가 지금 갈까요? “
” 재훈이가 재훈이가 ‘
그 뒷담화를 들은 나는 무슨 생각으로 택시를 탔는지 모르겠다.
‘ 교통사고로 아까 죽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눈물로 앞이 뿌옇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휴대전화에 찍힌 날짜를 봤다.
오늘이 4월 1일인지 만우절인지 그래서 엄마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까 하는데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날짜를 보여주고 있었고 몇 호실인지 말해주지 않았던 엄마를 대신 걸어온 아버지의 전화에 이 상황이 현실임을 느끼고 있었다.
” 아버지 아니죠?거짓말이죠?”
” 안에 재훈이 엄마가 있으니까 한번 들어가 봐.정신 차려야 돼. “
이 상황에서 결심하기는 힘들었다.내 남편이 죽었다니 형이 죽었어.네 병실에 들어가 흰 천을 덥고 누워 있는 상처가 있는 형의 얼굴과 울다 지쳐 멍하니 앉아 있는 어머니의 얼굴과 마주쳤고, 나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 아니잖아, 이거랑 앞으로 50년 지겹더라도 같이 하기로 했잖아.붙어있대.근데 먼저 가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화를 내기 전에 일어나라고 형을 흔들어봐도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온기 없는 몸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님을 말해줬다.
” 너마저 쓰러지면 안 되는 재훈 엄마도 겨우 버티고 있으니 마음은 아프지만 꼭 견뎌야 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 상한이 진짜가 아니면 꿈을 꾸기 때문에 쓰러져 일어나면 언제나처럼 오빠가 나를 바라보며
” 우리 아내 너무 예쁘다.
하면서 웃었으면 좋겠다.하지만 현실은 잔인하고 밝게 웃고 있는 오빠의 영정사진을 보고 나서야 이 사람이 내 옆에 있구나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비참한 사람이었다.하루 종일 울고 다음날부터는 장례식장을 찾는 분을 맞아 입구가 포도청처럼 음식을 씹어 삼켰다.
” 재훈이 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게 나왔어.네가 제일 먼저 봐야 할 것 같아서.
아버지가 나에게 건넨 건 오빠의 일기장 같았다.내가 먼저 봐야 한다며 건네줬고,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눈물이 났다.
‘ 이걸 본다는 건 내가 더 이상 당신 곁에 없다는 거지 뭐부터 말해야 할지 첫 장부터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이야.
” 네?”
” 뇌종양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어.건강 빼고는 시체라고 했던 내가 뇌종양이라고 하니까.
두통이 심했는데 일도 많아서 스트레스 받아서 발생하는 편두통인 줄 알았어.근데 그게 아니었나 봐.
치료는 해보겠지만 얼마나 못 살 수도 있고 기억도 점점 잃어갈 수도 있다는 시한부 같은 판정을 받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너한테 뭐라고 해야 할지, 아니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 주말 부부를 해야 할 것 같다.
”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너에게 주말부부를 말한거야 2공장같은건 없었는데 말이야 너와 매일 같이하면서 치료받고 고통을 참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거야
평일에 떨어져 있으면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하지만 내가 곧 죽는다는 말은 도저히 못하니까 전화도 자주 하고 영상통화도 자주 하면서 당신이 항상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근데 그것도 내 고통의 틈새가 짧아지기 시작해서 어려웠어
” 내가 왜 그랬을까.
게다가 어느 날은 네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어.우리가 영상통화를 했다는 사실도 잊고 내가 결혼했는지, 이 여자는 누구길래 나를 보며 웃기도 했다.
” 기억 안 나? 나 외로워.
그 말 알아?맞은 놈은 편하게 자지만 맞은 놈은 편하게 못 잔다는 거야?이럴 때 쓰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을 잃어버리는 나는 무엇을 잃었는지 모르니까 슬프지 않지만 기억해주지 않는 나를 보는 너는 너무 슬프기 때문에 그때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거야.
” 나? 그거 안 마시잖아.알레르기가 있어서 마시고 응급실 간 거 기억 안 나?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기억나는건 적었지만 기억나는건 너에게 직접 물어봐야해서 혹시라도 너가 슬퍼할까봐 걱정했어.그런 사소한 것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구.
그래도 아프니까 좋은 점이 있었어.매일 새롭고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난 너를 읽으면서 이런 사람이 내 아내였구나 이렇게 멋지고 예쁜 여자가 나를 만나줬구나 오늘은 얼마나 많이, 크게 너를 사랑해 줄까 설레인다.
한가지 걱정은 네가 너무 슬플까봐
” 오빠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아픈걸 숨기고 나혼자 멀리 여행가면 울고 같이 따라온다고 하잖아 나같은 사람은 잊고 행복하고 빛나게 살아가길 바라지만 내 마음을 몰라줄 것 같아서
아, 이건 용서 못할 것 같은데 아마 네가 화낼 거야.우리 혼인신고가 안됐어.1년 기념으로 하자고 했잖아.당신이 너무 바빠서 나 혼자 가야 했을 때 내가 뇌종양에 걸린 걸 알고 난 뒤라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어.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내가 발목을 잡을 수가 없잖아
얼마나 더 네 곁에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매일 처음 사랑처럼 사랑할 거야 이걸 읽고 너무 아파하지 말고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면 그때 화내고 투덜거려도 다 받아줄게.
너무 좋아。
일기장을 덮고 목이 따끔하게 눈물을 참았다. 하늘도 무심코 곧 하늘로 가야 할 천사를 이렇게 빨리 데려가시다니 너무 원망스러웠다.
뇌종양이라는 고통을 주고는 아픔을 견디고 있는 사람에게 교통사고라니… 그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는 게 하나님 같군요.
” 바보야, 새로운 출발은 뭔가 새로운 출발이라는 듯이 혼자 살아간다.새 출발을 하고 나중에 만났을 때 얼마나 원망하려 하느냐.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오빠를 한 번 바라본다.
” 50년 뒤에 보자.
이번 글은 조금 슬픈 내용이었습니다.주제를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