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잘 모르는 나훈아 씨의 가수가 된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오랜만에 우리에게 라이브 공연으로 우울한 추석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추억을 선사해주신 분입니다.저희 아저씨(?) 같은 나훈아씨는 여전히 풍채가 좋아서 아우라가 대단한 모습으로 나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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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초창기 사진.
나훈아 씨를 한국에서 모르시는 분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노래와 작사 작곡을 모두 하는 분들을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는데, 이 분이 한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훈아 씨의 본명은 최홍기라고 되어 있습니다.인터넷에서 보면 1947년생으로 원래 73세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951년생이라는 말이 맞다는 게 정설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굉장히 험난한 연예계에서 나이가 어릴 때 약자로 보일까 봐 올렸을 거라는 추측이 우세했습니다.
그 당시 부산 출항동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는 부산에 다녔는데 서울에 와서 서라벌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셨는데 중학교 때는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뛰어난 야구선수 내야수로서 대단한 실력이 있었다고 합니다.그때 같이 뛰었던 친구들 중에 지금은 아주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신 분들도 많았대요.고등학교 1학년 때 소풍을 가서 우리가 잘 아는 ‘이별의 부산 스테이션’을 불렀는데 근처 여고에서도 같이 소풍을 온 것 같아요.그때 굉장히 나훈아 씨가 노래를 잘해서 그날 이후로 굉장히 그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대요.그 이후로 인근 여고생들에게 최홍기 하면 노래를 최고로 부르는 학생이라는 소문이 쟁쟁했다고 합니다.
히트곡으로는 거의 120곡이 넘지만 그 노래들은 대부분 본인이 자작곡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그래서 한국에서 노래방에 기계에 가장 많은 곡이 수록된 가수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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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나훈의 동반사진
나훈아 씨 하면 70년대에 또 한 명의 남진 씨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이 두 분이 그 당시에 1세대를 양분해서 굉장히 유명했어요.그 시대를 살았던 팬분들은 아마 두 분이 양대 산맥으로서 어느 한쪽을 응원하셨을 거예요.
나훈아 씨와 남진 씨, 그 두 분은 출생이나 이미지에서도 굉장히 극명하게 달랐습니다.남진씨는 전남 목포에서 국회의원의 장남으로 태어나 수려한 외모로 서울로 전학을 왔습니다.식사하러 갔는데 그 레스토랑에서 팝송을 부르고 가수 섭외를 받았대요.
그 방면으로 나훈아 씨는 그 부산의 필드에 다니며 무역상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가수의 꿈을 안고 서라벌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집이 부유하지 않아서 음반사에서 청소를 하다가 음반사에 녹음하러 와야 할 가수가 오지 않아서 그 당시 음반사 사장님이 농담으로 “야! 네가 대신 불러볼래?”라고 했는데 너무 잘 불러서 그 당시에 캐스팅이 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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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남진동반사진
남진씨는 매우 수려한 외모와 목소리로 지금도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한편 나훈아 씨는 그 당시에 굉장히 무뚝뚝한 시골뜨기라고 할 정도의 외모였는데 음악성으로 평가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활동면에서도 남진 씨는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많이 활동하고 또 후배 가수와의 협업 등을 통해서 하는 공연을 많이 해서 대중적인 이미지를 잘 닦아주신 분이라면 나훈아 씨 같은 경우는 주로 공연 위주의 활동을 했습니다.그래서 신비주의 컨셉으로 자리잡은 가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어게인 콘서트
아무튼 나훈아 씨는 일년에 하루만 공연을 하시는데 심지어 무료 티켓이 없는 걸로도 굉장히 유명하잖아요.그런데 이번 KBS 공연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위로하는 측면에서 단 한 명의 공연료도 받지 않아서 관심이 그쪽으로 많이 쏠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2020 대한민국 어게인TV를 통한 공연에서는 장장 2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어 무려 29곡 모두를 선물받았습니다.70대의 나이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나타났습니다.
중간중간 댓글도 백미였어요.정지백가리라는 사투리도 쓰면서 김동건 아나운서와의 대화에서
나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은 못해도 기타와 피아노만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훈장을 사양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수라는 직업에 무게가 너무 무거운데 훈장까지 끌어안으면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가수라는 직업이 술도 한잔, 때로는 마시고 시시콜콜한 말도 하고 친구들과 쓸데없는 얘기도 하고 술을 마셔야 하는데 훈장을 받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니 제가 그 무게를 견딜 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역시 가황은 가황이죠.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신비주의라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언론이 만들어낸 얘기다.가수들은 꿈을 파는 사람들로 꿈이 고갈된 것 같아 무대를 떠났지만 별의별 말을 다 했다.뇌경색으로 말도 못하고 거동도 부자연스러웠다는 가수와 언론도 있었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언론에 대한 일격을 가했을 것이다.또 이런 말도 남겼다.
KBS는 이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다시 태어나자고 명령하는 것보다 더 엄격하게 다가왔습니다.표현이 아주 고급스럽고 날카로운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 주셨어요.
그리고 태수 형이라는 노래를 통해서 나훈아 씨가 태수 형한테 세상 왜 그래. 왜 이렇게 힘들어? 그랬더니 태수 씨도 세상이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랬대요.세상이 왜 이러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월이란 건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이것에 대해서 나훈아 씨는 이런 말도 하셨죠.
세월은 누가 뭐래도 가게 돼 있다.어차피 시간이 흐를 거면 시간모퉁이를 비틀어 끌고 가거라.매일 같은 일을 하면 끌려가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가본 곳도 가보고, 안 한 일을 생각해야 세월이 늦어진다.”
그 외에도 삼성가와 평양 공연 보이콧한 비하인드 등 어쨌든 나훈아 씨가 심상치 않고 가수 중의 황제라는 격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셨는데 저도 책을 더 많이 읽으면 이분처럼 품위있고 고귀한 인격을 갖게 될까요?모처럼 또 다른 의미의 행복한 추석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후후
나훈아 씨가 마지막으로 ‘남자’라는 노래를 부를 때 코로나19를 박멸하는 영상이 있었죠?이데일리 박지혜 기자가 쓴 기사에 있던 영상을 여기에 위에 팜했습니다.정말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가황 나훈아 씨에게 빠져 집에 틀어박혀 있다”며 ‘팬의 마음(fan)’을 드러냈다. 이 지사는 추석 당일인 1일 오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