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 다시 무대 서서 결혼과 육아로 경력단절 배우

OHMY 뉴스 시리즈 프리미엄 – 민병래의 사수ㅣ1화

사는 이야기

민병래(pmsigni)

결혼과 육아로 경력단절 배우 주주영 다시 무대 서다

국립극단 시즌단원 주주영, 아들과 함께한 행복한 하루 이야기.

알람이 방안으로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더라. 인영은 눈을 떴다. 옆자리의 아들도 소리를 들었는지 몸을 움직인다.

아들 좀 더 자. 엄마가 맛있는 아침을 만들어 드린다.”

잠이 가득 남은 아들의 등을 쓰다듬고 인영은 기지개를 켜며 부엌으로 향한다. 아침 창가에는 말일 햇살이 가득하다.

오늘은 바쁜 날, 7살짜리는 아침에 유치원에서 발표회를 한다. 인영은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오후부터 첫 훈련이 예정돼 있다. 인영은 서둘러 아들이 좋아하는 계란말이 두껍게 하고 시금치 국물을 준비한다.

이제 일어나야 하나요. 벌써 8시입니다!”

인영은 아침 준비가 되자 아들을 깨웠다. 어제는 아들과 같은 이불 밑에서 손을 잡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녀의 이야기부터 장래의 꿈까지. 놈은 기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과학을 잘하는 화가, 그림그리는 요리사 등등. 그런 꿈을 늘어놓았다. 그런 아들이 인영은 “고맙고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다.

▲국립극단에서 원컷 겨울바람이 아직 남아 있는 국립극단 아침창가에서 ᄆᆫᅧᅧᆼ · 민병래

인영은 엉뚱하게도 4살 때부터 어디서 주웠는지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이야기를 부딪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공부해 2002년 데뷔했다. 많은 작품은 아니더라도 무대에서 신나게 놀았다. 즐거운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생활은 막연해 무대 뒤의 어두운 커튼 같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혹시 어머니 무대에 아들이 동경할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다행히 아들이 늘어난 꿈 꾸러미에 ‘연극배우’가 없어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엄마, 아빠 오래 기다리셨어요. 지금부터 하늘반 어린이들의 동화극으로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박수 많이 쳐주세요.”

기다리던 놈의 공연이 시작된다. 제목도, 아들의 역할도 모른 채 허둥댔다. 그래서인지 인영의 가슴이 더욱 두근거린다. 누구 아들인데, 아련하자고 되뇌어도 심장 박동수를 느낄 정도였다.

걱정돼 유치원 차에 실려 인적이 서둘러 도착한 구민회관. 소강당은 이미 만원이었다. 손자들의 장난기를 보고 팔았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눈에 띄었다. 손에 꽃다발도 가득했고 플래시 울리는 소리도 요란했다. 그 즐거움을 조용히 잠재우고 선생님의 인사가 소강당에 울려 퍼졌다.

인영은 문득 첫 작품이었던 <기생충>이 떠올랐다. 오태석 연출의 작품이자 국립극장 달오름으로 막을 올렸다. 오태석 연출의 인기에 힘입어 관심이 높았다. 암표가 돌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처음 선 큰 무대 조명은 눈부셨고 음향은 뜨거웠다. 게다가 객석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이상하게 떨리지 않았다. 폭염으로 지친 몸에 해질녘의 시원함이 몸을 감쌌다. 그래서 첫 무대에서 뛰어다녔다. 어차피 미래의 약속이 없는 연극장에 들어왔기 때문에 무대가 있을 때 마음껏 놀고 싶었다. 신나게 즐겁게 그렇게 첫 무대를 마쳤다. 돌이켜보면 행복한 추억이었다.

“와아!”

소강당이 갑자기 박수와 웃음소리로 북새통을 이뤘다. 아이들이 점프하며 나와 무대를 채우고 배꼽 인사, 시작 인사를 했다. 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떨어진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놈! 정말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다.

그러나 한때는 미웠다. 아들과 떨어져 있고 싶어지기도 했다. 인영은 데뷔 후 몇 년 전인 2006년 ‘경숙, 경숙의 아버지’에서 ‘경숙’ 역을 잘해 ‘뜨거운’ 시대를 보냈다.

그해 동아연기상 희서연극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더 많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결혼 후 많이 달라졌다. 작품을 받지 못했다. 출산 후에는 더욱 그랬다. 산후우울증이 더해지면서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 원한이 아들에게 옮겨졌다.

그때 어렵게 선 무대 ‘반신’!

극 중 술라는 샴쌍둥이 중 똑똑하지만 괴물처럼 못생긴 아이였고 동생 마리아는 바보지만 아름다웠다. 술라는 동생을 잃고 혼자가 되고 싶어해. 술라는 결국 동생 마리아의 희생 덕분에 혼자가 된다.

인영은 반신에서 수라 역을 맡았다. 그때 인영은 “아름답지만 돌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리아가 자신의 아기로 영양을 모두 빼앗기고 괴물처럼 변해버린 채 나쁜 마음만으로 똘 뭉친 술라가 자신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술라가 ‘분리수술에 대한 대화’를 엿듣고, ‘마리아를 죽이고 나를 살려달라’고 악을 써야 하는 신”에서 인영은 가슴이 너무 조이는 경험을 했다. 마리아가 아수라를 위해 희생을 선택하고 대신 죽을 때는 인영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그가 겪었던 고통과는 깊이가 너무 다른 경험이었다.

극을 마치고 마침내 인영은 아들을 받아들였다. 인생으로서. 그 후 아들과 함께한 시간은 즐겁고 행복하고 축복이 되었다.

아이들이 시작 인사를 마치고 퇴장하자 소극장 불이 꺼졌다. 순간 숨이 차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무대 중앙을 약하게 비추는 스팟 조명이 들어오면서 음악이 퍼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OST였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인어왕자’를 사랑하고 구출하는 동화 같은 영화다. 아마 아이 버전으로 ‘이 판타지를 준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인영은 몸을 무대 앞으로 숙였다.

그런데 반갑게도 아들이 첫 무대에 나섰다. 짝꿍은 같은 반 수정이었다. 두 사람이 조명 한가운데 섰다. 그리고 아들의 첫 대사가 시작됐다.

우리는 저 인어왕자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수정이가 대사를 이어갈 수 없었다. 객석에서는 ‘어머나’, ‘힘내라’ 이런 수군거림이 벌어지는 듯했다. 아들도 약간 얼굴이 상기돼 다시 대사를 했다.

우리는 저 인어왕자를 구해야 한다.

다시 차례가 왔지만 수정은 여전히 당황하며 볼이 붉어졌다. 어두운 조명에서도 아이의 표정이 읽혔다. 인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무대 아래에서 선생님도 당황한 듯 수정에게 기운을 북돋우는 손짓을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소강당에서는 수군거림이 더 커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들의 얼굴도 조금 울 것 같았다. 수정은 더욱 얼어붙었고 인영은 침이 더욱 말랐다. 얇은 조명도 흔들리는 듯했다.

그때 아들이 한발 수정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고 수정을 무대 앞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다시 대사를 친구들에게 말하라고 속삭였다.

수정아, 우리 저 인어왕자를 구하자.”

그러자 수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 앞으로 정체 반보 나오는 것 같더니 “그래, 우리 인어왕자를 구하자”고 겨우 실타래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정이 마침내 입을 열자 소극장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모두가 애타는 순간이었다. 문득 수정 어머니의 얼굴에 눈물이 맺힌 듯했다. 담임 선생님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 퍼지고 가슴에 손을 얹고 기뻐한다. 인영도의 몸이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들이 무척이나 감탄했다.

인영은 ‘나라면’을 해결책으로 연기생활 신인 시절을 보냈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접근법을 많이 썼다. 그런데 ‘나라면’이라고 대입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작다는 것, 세상에는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언젠가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 배역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한 신인 시절에는 자신이 맡은 배역의 감정과 상황에만 충실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만 갇혀 있었다. 상대역, 그들의 호흡과 감정선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기운, 상대의 기운을 주고받는 것은 염두에 없었다. 그러다 자기 앞에 고개를 숙인 부모님의 배역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순간부터 몰입할 대상이 옮겨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우주가 펼쳐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런 변화가 바로 결혼과 출산, 반신 무대에서의 깨달음이 준 변화였다. 이들은 모두 40열에 이르러 얻은 깨달음이었다.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빨간 셔터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 민병래

▲국립극단에서 붉은 색을 배경으로 주주영의 강한 생명력을 담고 싶었다. ⓒ 민병래

그런데 아들이 7살 아들이 첫 무대에서 수정이의 마음을 챙겨주고 수정을 이끌어줘서 극을 푼다는 게 너무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발표회는 그 후부터 일사천리였다. 몇 편의 단막극과 아이들의 리듬이 이어지고 웃음소리, 박수소리, 그리고 몇 번의 커튼콜까지…

인영은 발표회 내내 행복했다. 엄마로서 관객으로서…

수정이의 어머니와 많은 학부모,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을 뒤로 하고 인영은 아들을 데려왔다. 오늘 발표회 후 아들이 있을 곳이 별로 없었다. 발표회 후 모두 가족들과 즐거운 식사를 할 텐데요. 그래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국립극단 시즌극 연습에 아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인영은 지난해부터 시즌 단원이 됐다.

시즌 단원들은 서류심사와 오디션을 거쳐 뽑는다. 2018년부터 국립극단 시즌 단원은 기존 1년이 아닌 2년간 활동하게 됐다. 한 배우는 1년에 세 작품을 하고 개런티는 작품 연습에 들어갈 때와 공연이 끝날 때 절반씩 받는 시스템이다.

오늘 무대에 서도 3개월은 물론 6개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연극배우의 현실, 인연도 늘 예외는 아니었다. 무대는 즐거웠지만 무대를 내리면 공과금, 휴대전화 요금, 월세를 늘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서 2년 계약은 큰 힘이 됐다. 벌써 2년째에 접어들고 있으니까. 올 여름쯤이면 내년 걱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립극단 시즌 단원의 위치는 정말 힘이 되고 소중했다. 이런 기회가 많은 배우들에게 널리 제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올해 첫 훈련은 더 궁금하고 준비를 많이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첫날을 아들과 함께 하되 아들이 배우가 되는 것도 아닌(?) 생각만 하면 극장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한쪽 구석에서 연습을 바라보게 할 생각이었다.

인영은 아들을 아끼는 경차에 태우고 자신도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발표회 열기를 옮겨왔는지 쌀쌀한 날씨에도 차 안은 따뜻했다. 극장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거리 시동을 걸었다. 인영은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다. 아들과 발표회에 대해 할 얘기가 너무 많았다.

인영은 가방에서 우유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아들 오늘 정말 잘했어. 근데 아까 수정이가 망설였잖아. 너도 당황했지?맞아 아까는 너무 억울했어.”

인영은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셰이프 오브 워터 OST를 틀었다. 아들도 자랑하고 싶었는지 설명이 이어졌다.

‘내가 실수하면 어떡해 어떡해 너무 떨려’ 그랬잖아. 그때마다 엄마가 실수해도 괜찮아, 실수하는 게 아이들은 자연스럽고 더 재밌다. 그렇게 말해준 게 힘이 됐다.”

아들의 말에 인영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무심코 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내 말을 이렇게 가슴에 새겨두었다니… 기쁘고 고마웠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미 차는 원효대교를 넘고 있었다. 차가 막히기 시작하는데 차 안에 짜증은 없고 흥만 넘친다. 갑자기 아들이 묻는다.

“근데 엄마, 지금 차에서 나오는 노래.발표회 때 음악이지?맞아 정말 신기했다.셰이프 오브 워터로 인어왕자를 구해 주는 샐리 호킨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데 엄마가 요즘 바빠서 네 공연 제목도 모르고 네가 뭘 맡았는지도 몰랐어.”엄마,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그랬어? 아마 들었는데 엄마가 오늘부터 하는 시즌 공연 대본 연습하느라 바빴나봐, 아들 미안해.”

원호대교를 넘으면 바로 눈앞에 극장이 들어온다. 만나서 반가워.아들과 나의 생활을 삶을 지탱해주는 곳.고마운 곳이다.

아들, 엄마가 사과도 할 겸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나오는 엄마가 좋아하는 대사를 해줄까?그래 엄마.

인영은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다시 OST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를 읊는다.

너의 모습을 감지할 수는 없지만 어디서든 너를 찾을 수 있는 너의 존재는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내 가슴을 겸손하게 하고 너는 어디에나 있으니까.

주영의 프로필 출생: 1978년 학력: 상명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데뷔: 2002년 연극 ‘기생충’ 수상: 2006년 제43회 동아연극상, 히서연극상 경력: 2002년 국립극단 연수단원 출연작품: 경숙이 아버지, 반신, 1945 등

주영이를 만든 시간

▲주주영의 4학년 학예발표회 때 모습 중 색동저고리가 주주연이다. ⓒ 주주영

▲주영 경숙이 초연때 모습은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열정이 있었던 무대다 ᅮ인 · · · ·주영

▲ 불고기 드래곤 공연시 사진을 일본에서 연습해 공연했을 때 한 상점에서 ♣주.

▲ 불고기 드래곤 공연 때 사진의 옷이 땀에 젖어 여러 겹 갈아입고 연습했다..정말 즐겁고 의미있었을 때의 모습, 주주영

기자소개 민병래는 1999년 광고대행사인 황소와 나비를 창업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1998년부터 문해교실과 다문화도서관을 운영하는 시민단체 푸른의 이사를 맡고 있으며 2000년 호암미술관에 있는 아름다운 한국문화재(푸른자전거출판)를 썼다. 2015년부터 군함도 작가 이재갑 사진가와 함께 생각하는 사진회 ‘포피엔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7년 공동전시 ‘마포, 사진을 품다’에 참가하고 있다.이 기자는 10만 클럽 회원이에요.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