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인공위성 기술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인공위성 기술은 다양한 산업에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한국은 인공위성을 자체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며 얼마 전에는 누리호 발사도 성공했습니다.
오늘은 인공위성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최순달 박사의 업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경제 탐정이 되어 단서 사진을 보고 탐정 퀴즈를 푸는 시간을 갖읍시다.


탐정 퀴즈의 정답을 맞힐 수 있을까요?정답을 찾기 위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최승달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노는 것보다 기계, 전기장치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그러한 관심 덕분에 그는 자연스럽게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과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졸업한 1954년 당시에는 한국전쟁 이후 혼란의 시기였습니다.폭격으로 파괴된 건물과 피폐해진 대한민국은 과학과 관련된 일이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최순달은 수중에 있던 530달러를 손에 넣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최순달에게는 모든 것이 열악했던 유학생활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만족했습니다.

<미국 UC버클리대학> <스탠퍼드 박사학위를 받는 최순달> 그 결과 그는 미국 UC버클리대학에서 석사학위와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나사 제트추진연구소 최순달> 졸업 후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 입사해 7년간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1976년 최순달은 대한민국으로 귀국한 후 국방유도무기 레이더 기술의 국산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81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정부는 전국적인 전화망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TDX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TDX(Time Division Exchange) 전화를 걸 때 발신인과 수신인을 연결하는 교환 장치
정부는 TDX 개발을 최순달 소장에게 제안하고 240억의 개발비를 지원합니다.당시 연구소 전체의 1년 예산이 24억원이었는데요.단일 과제에 연구소 예산의 10배 가까운 투자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이런 정부의 과감한 투자에 대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셌는데요.개발을 위해서라면 정부의 확신을 줘야 했던 최순달 박사는 연구원들과 함께 각서를 제출했습니다.이것이 나중에 ‘TDX 혈서’라고 불리고 있습니다.’TDX혈서’ 내용 본 연구단 연구원 일동은 최첨단 기술인 시분할 전자교환기(TDX)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만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이라도 쉽게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
최순달 박사는 각서를 전달한 후 연구팀과 열심히 노력했습니다.결국 3년 만에 TDX 개발에 성공해 대한민국 통신 강국이 되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목표는 우주였습니다.한국과학기술대학교(현 KAIST)로 이직한 최순달 박사는 인공위성연구센터 초대 소장을 맡아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에 촬영된 최순달 교수와 영국 샐리대 유학생의 모습> 최순달 박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수한 인재 양성이었습니다.그는 당시 최고의 기술을 가진 영국 샐리대학 인공위성연구소에 학생 5명을 유학생으로 파견했습니다.
<우리별 1호 발사 직전 안정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KAIST 인공위성센터>의 최순달 박사는 유학생들에게 기초학문을 강조했고, 요청을 받은 유학생들은 밤낮으로 제작기술을 익혀 위성설계도를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찾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별 1호 비행 모델 모형> 그리고 그 노력은 1992년 한국 최초의 위성 ‘우리별 1호’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별 3호 발사 장면> 최순달 박사는 이후에도 연구원들과 함께 우리별 2호, 3호 발사 성공까지 이뤄냈습니다.그러나 성공의 기쁨도 잠시, 1997년 외환위기에 인공위성연구센터도 통폐합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최순달 박사는 연구원과 함께 퇴직한 후 국내 최초의 인공위성 벤처기업을 설립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 별위성의 우수성을 알고 있던 다른 나라들은 인공위성 제작을 의뢰했고 말레이시아와의 2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터키, UAE, 스페인 등에 잇따라 인공위성을 수출해 지금까지 세계 3대 대형 위성업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별 1호가 우주를 향해 30년! 그동안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 개발에 성공해 세계적인 인공위성 강국이 되고 달 궤도를 도는 탐사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항상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고 대한민국 산업과 과학기술을 이끈 과학자 최순달 박사가 있었습니다.
경제탐정 여러분,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실히 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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