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신문 칼럼에서 영화평을 봤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는 실제 안개와 노래 ‘안개’를 모티브로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분석해 안개가 등장한 소설과 영화에서 ‘안개’가 어떤 의미의 기제로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https://www.segye.com/newsView/20220701518250))
내 지인 영화평론가가 쓴 영화 칼럼이다. 본인은 자신이 영화를 좋아해서 평론을 하지만 영화평론가로 불리기에는 부끄럽다고 자주 말했다. 자신은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강사라는 신분이 어울린다고. 영화평론가의 지인이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게 특별한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VIP 시사회 초대권을 준 적도, 영화배우를 만날 수 있는 행사(영화제 등)에 나를 동반하지도 않는다. 영화배우를 만나거나 신작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다는 동정만 자랑스럽게 전할 뿐이다. 영화평론가 지인을 둔 덕분에 배만 아프다. 멋진 여배우와 찍은 투샷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특히 배가 아프다. 이럴 때는 정말 산(?)이 돈다. 화가 난다는 표현으로 이 참담한 심정을 표현할 수 없다(비속어는 이럴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꼭 나도 데려가 달라고 간청해 보겠지만 영화인이 아닌 이상 쉽지 않다고 선을 긋는다. 평소 드라이한 영화평론을 쓴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파트너다. 사람이 정말 드라이해. 드라이한 지인 탓은 아니지만 나는 영화관람은 극장보다 OTT를 선호한다.

헤어질 결심 > 포스터
그러나 <헤어질 결심>은 극장에서 볼 결심을 했다. 영화평론에서 주인공의 관계를 ‘안개’가 가진 상징적 의미로 표현했다는 설명에 ‘안개’를 모티브로 한 소설과 영화에 대한 설명이 신선해서가 아니다. 영화 포스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이 서로를 외면하지만 닿을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말 듯 한 두 손. 나는 알고 싶다. 그 두 손짓이 의미하는 바를. 포스터로는 안개처럼 모호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를 직접 봐야 한다.
사실 이 사실을 솔직히 말하면 여주인공 탠웨이를 스크린으로라도 보고 싶어서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색깔, 계에서 보여준 관능성, 늦가을에서의 우수에 찬 모습을 보며 나는 일찍이 이 배우를 내 여배우 명단에 올렸다. 그런데 얼마 전 제 탕웨이를 후배가 직관했다고 자랑했다. 영화투자사 홍보담당으로 영화 촬영장에 갈 기회가 있어 탕웨이를 보고 싶어 꾸물거리고 있다. 그녀와 마주쳤다고 자랑했다. 그 말을 들은 중년 남성들은 일제히 “어떻습니까. 대화를 해보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실제로 실제로 대면했더니 얼어붙어 ‘하이~’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물론 탕웨이도 “하이”라고 답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탕웨이가 보고 싶어 탕웨이가 대기하는 곳을 배회하며 천우신조로 기회를 잡았지만, ‘하일~’ 한 단어로 만남을 마쳤다니 한심하다고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래도 자신은 너무 좋았다고 한다. 탕웨이에서 형광등 만개가 빛나듯 아우라가 뼈를 내민 나 뭐랄까… 나는 내심 부러웠다. 탕웨이를 직관했다니. 예전에 탕웨이를 나는 컴퓨터 화면으로만 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 스크린에서 만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영화를 볼 결심은 이처럼 사심에서 비롯됐다. 아니야. 팬들이 배우를 보고 싶은 건 사심이 아니라 팬심이다.
실제로 <헤어질 결심>을 관람하려다 보니 개봉관이 몇 개 없어 상영시간대가 아침 또는 저녁으로 편중돼 있었다. 이제 이 영화의 상영이 끝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낮 2시 40분에 상영하는 씨네큐브 광화문에 가려고 한다. 사심이든 팬심이든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탕웨이 사생팬이 될 것 같다. 탕웨이를 직관한 후배도 짧은 만남 이후 자신은 탕웨이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다. 영화 감상을 써야 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영화에 집중하지 못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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