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씨의 기억속에 생생한 ‘삼양라면의 추억’ 1편 – 삼양라면클래식, 1분컵라면, 200냥, 김치라면(+농심의 전성기라면)

안녕하세요. 라면 정복자 호객꾼, 지·배용준입니다.최근 많은 분들의 추억 속에 있는 라면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나의 블로그를 찾아 주세요”태평”씨가 라면의 역사를 아주 잘 알고 필력이 있어 태평 씨의 추억 속에 있는 라면의 말을 라면을 좋아하는 분에게 물어보고 싶은지 물어 보았습니다.그리고 태평 씨에 흔쾌히 승낙하여 태평 씨의 라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인적 사항이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익명 ID”태평”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태평”씨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삼양 라면의 추억, 라면의 역사 이야기가 꽤 흥미로운데.보내신 글의 양이 많아 3부작으로 소개합니다.”태평 씨의 추억 속에 있는 삼양 라면의 이야기”3부작 중 1개를 먼저 드립니다.함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태평 씨의 소개>안녕하세요.”라면 완전 정복”블로그의 구독자 ID”태평”입니다.국민 학교 학력 시험(수능 시험이 아니라)출신인 남이 말하는 노인이라 적극적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가끔 이 블로그에 올라오는 라면 중에서 내가 어릴 때 먹거나, 텔레비전 CM등을 통해서 본 추억의 라면 글을 보면 가끔 기억이 떠오르고 코멘트를 남겨수준의 구독자입니다.블로그의 주인 지·영준 씨가 제가 쓴 글을 보고흥미를 느꼈는지, 과거의 추억의 라면 이야기를 적어 보라고 블로그의 메모와 메일로 제안하셔서 특히 고민하지 않고 승낙하고 글을 작성합니다.내가 라면 전문가도 아니고 솔직히 이제 라면을 즐기면서 먹는 나이도 아니지만 내가 다른 사람보다 과거의 것에 대한 기억력이 좋은 편이어서 어렸을 때 느낀 감성으로 옛날의 라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어떤 글을 작성할 것인지를 2시간 고민하고, 나름대로 자료 조사를 하면서, 일필휘지로 글을 작성합니다.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는 글이므로 추억 보정으로 잘못된 정보일지도 모릅니다.그냥 재미로 보시고, 팩트 체크하지 마세요… 그렇긴<가장 맛있게 먹는 라면 추억>과거에 외 할아버지의 집에 놀러 가거나 거의 상주하던 미취학 시절 처음으로 라면에 접한 것 같아요.그 당시는 어떻게 박·정희 말 정·두한 초기 시기로, 사회적으로 변혁의 시기였습니다.놀랍게도 나는 어린 나이에 80년 5월을 기억하고 있습니다.거기에서도 버스의 창문을 깨뜨려서 버스의 창문에 앉아 청년들이 도로에서 시위를 벌이고 정말 헬기에서 전단을 뿌리고 주우러 다닌 미취학 때였지요.그 당시, 라면은 삼양과 농심밖에 못한 듯 지금처럼 다양한 제품이 아니라 정말 단순한 라인 업이었습니다.외 할머니는 항상 삼양 라면만 사서 만들어 준 것이고 삼양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합니다.

삼양라면 포장지 변천사 1 (사진 : 삼양제공)

삼양라면 포장지 변천사 2 (사진 : 삼양제공)

삼양라면 포장지 변천사 2 (사진 : 삼양제공)

삼양 라면 클래식(1970년대 말~80년대 초) 어린 시절의 기억도 생각보다 맛이 없었습니다.100원의 라면인데 판매량은 모든 라면 속에서 그 당시 1위였지만 따분한 수프, 살이 조금 나온 레벨의 향기와 기름기…… 그렇긴 무엇보다 면이 빨리 퍼질 느낌… 그렇긴제가 좋아하는 설익은 느낌으로 끓이면 더 맛이 없었다…… 그렇긴 그래도 그 당시의 노인들은 중독의 생각이 들정도 많이 먹었네요.경합 제품의 농심 해피 라면은 어른들은 거의 못 산 것 같네요.(지금 보면 농심 해피 라면에는 장난감, 스티커가 포장지 속에 있었던 것 같네요.어쨌든 농심이 예나 지금이나 장사는 잘합니다.장난감을 모아 농심 라면에 중독이 된 내 친구가 많습니다.)1982년 6월 출시된 농심 해피소고기라면 (사진 : 농심 제공)”삼양 1분 컵라면(80년대 초)은 내가 어린 시절 영화에 빠져든다, 부모 몰래 틈틈이 시내 영화관에 다녔어요.주로 동시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봤는데 영화 상영 전에 보이고 주는 극장 광고도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초등 학생(전 국민 학생이었습니다)이었지만, 광고는 성인 광고도 많았어요… 그렇긴알몸의 언니들의 속옷 광고, 특히 남성용 바지의 광고는 그 치졸함(상발울쟈쯔키ー!!!)에 지금도 부끄러움을 넘어 웃음이 나옵니다.함께 영화를 본 모든 관객이 깔깔깔 웃었던 기억···이 순간만큼은 타임 머신을 타고 그 영화관에 돌아오고 싶어요.침대에 누웠다 이쁜 누나 앞에 세 남자가 삼각 팬티를 입고 등장하고 재키!라고 외치면서 나란히 있던 명장면.···아!!!시네마 천국이었습니다.)각설과 그 당시 극장 광고 안에 세 요의 “1분 컵라면”광고가 있었습니다.그 당시 정말 핫였던 개그맨의 박·세밍 씨(유행어:”냉장고를 녹이는 사나이”라고 말하면서 미모의 여성들을 유혹하는 제비의 역할을 많이 하던 그 당시의 미남 개그맨 선생)이 극장의 대형 스크린 화면에서 컵라면을 가지고 살짝 눈으로 웃고 있었다(이 분의 코 밑에 커다란 점이 있어서 더 인상 깊었어요.)장면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극장판 광고는 위 광고와 조금 다른 버전으로 길이가 더 길었던 것 같아요. 박세민씨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관령 삼양목장을 배경으로 들리는 “정직과 신용의 삼양식품”의 코멘트도 강렬했습니다. 거의 ‘모건 프리먼’ 수준의 위엄이 느껴집니다.)(왼쪽)광고에 등장하는 배우 박·세밍 씨(네이버 프로필 사진)(오른쪽)당시 라면 자판기에서 시민들이 삼양 1분 컵라면을 즐기는 모습, 아무튼 극장 광고를 통해서 컵라면의 존재를 알고 라면을 끊임없이 물만 쏟아 먹는 것도 있다는 정보를 획득했습니다.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물을 잠궈야 했기에, 집에서는 거의 컵라면을 못 먹었네요.”나의 어린 시절 부모들은 용돈을 너무 주지 않았고, 아이들도 상냥해서(나를 기준) 높은 컵라면을 사서 집에서 먹지 않았습니다.단지 놀이 공원에 가면 가끔 라면 자판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나도 역시 삼양 컵라면을 유원지의 자동 판매기에서 몇번 먹은 것 같네요.당시는 삼양 농심의 시장 점유율이 세게 밀지 못한 시기라고 하면 자판기 제조/판매 사업을 하는 등 새로운 시장 개척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그것보다 맛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만, 바보 같은 행동을 많이 했어요.1980년대 농심 지면 광고 농심 대표 라면인 신라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육개장, 너구리가 있다.모두 1980년대에 출시된 베스트셀러 라면이다.농심의 급부상/ 빠른 시대 변화/삼양의 처절한 생존 노력(80년대 중반)80년대는 농심의 전성 시대였다.82년에 주먹 국숫발,/너구리, 83년 안성탕면, 84년에 짜파게티, 86년에 신 라면 등 전설의 제품을 발매했습니다.일부 사람들은 “농심의 기적 80년대”라고 칭하는 만큼 히트 상품을 잇달아 발매했습니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농심의 집념과 정열이 만든 기적이라고 봐야죠.70년 저가/덤핑 이미지를 신제품 개발에 반전시켰습니다.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설 같은 말이 있는데 어느 날 정부의 위생 검열 공무원 농심 공장에 벌레가 있어 수프를 갖고 찾고 가 공장의 담당자에게 내밀자 그 직원이 국을 뜯어서 바로 삼켰다고 말했습니다.거의 농심 업체 입장에서는 윤·봉길/안준호· 준 군 의사 같은 행동입니다.1980년대 농심, 검은소라면 광고마케팅도 정말 잘 했어요. 너구리 출시 초기에 미니프라모델을 너구리 봉지 안에 넣어서 출시해서 아이 코에 묻은 돈을 많이 가져갔던 것을 기억합니다. 특히 88올림픽 공식 후원사 마크. 정말 대단한 마케팅이었어요. 그때는 저는 돈을 가장 많이 낸 기업이 올림픽 공식 후원사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IOC에서 품질을 보증하는 제품만이 올림픽 공식 후원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1985년 6월 출시된 ‘농심 검은우라면’ 서울올림픽 공식 공급 지정 라면이라는 마크가 선명하다.(사진 : 농심제공)상기의 ” 검은 소 라면”은 서울 올림픽 공식 지정 라면 선정 기념작으로 발매되어 초반에 대대적으로 마케팅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농심 특기의 호돌이 스티커를 초반에 상품의 안에 넣어 아이들에게 씌어서···가격은 120원대···지금 보면 쇠고기의 향기만 라면 했지만 올림픽 마크의 덕분이라 라면이라고 생각했다.신 라면이 전설적으로 히트하게 된 것은 괴로움도 있지만 기존 발매된 라면에 비해서 가장 붉은 색이 좋고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아요.내 기억으로 신 라면이 나오면서 게다가 중화 요리점에서 다시 잔뜩 짬뽕이 잘 팔리기 시작한 것 같군요.사진 : 태평님 제공농심의 놀라운 신제품을 살펴보면 농심이 시대의 변화를 잘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소득이 높아지면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수준의 라면 맛과 품질로는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없음을 깨닫고 제품에 반영했습니다. 삼양은 노력을 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미투 상품을 출시하지만 대부분 처절한 실패로 끝났습니다.1987년 출시된 ‘삼양이백냥라면’ 광고1987년 출시된 ‘삼양이백냥라면’ 광고삼양 이백냥 라면의 모습 (사진: 인천상회박물관) 삼양이 만든 신라면의 미투제품 ‘이백냥’은 신라면의 전설적인 성공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성적을 얻었습니다. 복고풍을 타고 최근 재발매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부끄러운 성적표입니다.삼양에서 레트로 콘셉트로 2020년 4월 재출시한 200량 라면이 출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단종됐다.그래도 삼양이 200냥을 자체 패러디한 ‘삼백냥’은 먹을 만했습니다.역시 삼양은 해물라면과 우동은 80년대~90년대 초반에도 맛이 좋았습니다. 삼백 냥은 걸쭉한 해물 국물 맛이 좋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삼양이 만든 안성탕면 미투 제품 ‘서울탕면/영남탕면/호남탕면’ 광고는 본 기억이 있지만 저도 동네 마트 매장에서 본 적도 없습니다.삼양 김치 라면(1986년)삼양 김치 라면.1986년경에 먹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약에 김치가 아니면 무슨 재미로 살까?김치 없이는 못 사나!!!…거참… 않나!!!””김치의 주제가”정·그아은테 씨의 숨은 히트 곡이었는데, 이 노래를 바탕으로 약간 변형하고 삼양 김치 라면 CM상에서 직접 기타를 가지고 부릅니다.이 CM, 내가 어렸을 때도 멜로디가 쉽지 중독성이 있어서 많이 함께 불렀습니다.정·그아은테 씨는 전설 가요”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가수입니다.CM의 중간을 보면 어린 시절 배·죤옥 선생님도 출현합니다.이 라면 CF에서 봤을 때는 김치가 크고 맛있어 보였는데 실제 컵라면 상에서는 정말 작은 알갱이였네요.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요즘 나오는 김치라면은 이 맛이 안나요.. 아무래도 국물에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것 같습니다 만은 지금 생각해 봐도 맛은 나름대로 좋았고 이 제품 출시 이후로 저는 습관적으로 만드는 라면에 김치를 넣어서 먹었던 추억이 많아요.태평 씨의 기억 속에 있는 생생한 삼양라면의 추억’ 이야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라면을 좋아하는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의 라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라면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라면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이 계시면 [email protected] 이메일 또는 010-9744-8584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태평 씨의 기억 속에 있는 생생한 삼양라면의 추억’ 이야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라면을 좋아하는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의 라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라면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라면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이 계시면 [email protected] 이메일 또는 010-9744-8584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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