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치면 주변 사람들이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두 손으로 따로 연주하는지 궁금했다. 피아노는 왼손과 오른손이 각기 다른 건반 위를 움직이면서 주로 오른손은 멜로디를, 왼손은 하모니를 자유롭게 연주한다. 악보에 있는 음표대로 건반을 눌러 가면 그대로 하나의 음악이 된다.
제대로 된 곡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처음에는 탁구와 한 손으로 건반을 누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멋진 곡을 두 손으로 연주하고 싶다는 그 바람.<은파>라는 곡이 나에게는 그랬다. 초급 바이엘을 거쳐 체르니를 치면서 소곡집에 있던 아름다운 곡 음파의 선율은 나를 매료시켰다.제목은 알지만 ‘은파’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달빛을 받아 빛나는 은빛 물결을 희미하게 떠올리며 연주하는 소리의 하모니가 워낙 아름다운 곡이어서 그 곡을 연주하다 보면 홀로 피아니스트가 되는 기쁨이 충만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작가 나츠메 소세키의 일화를 떠올리며 달을 바라볼 나이가 됐다.그때나 지금이나 달빛에 물드는 밤하늘을 사랑하고 빛나는 별은 내 친구처럼 소중하다.달과 별이란 천체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문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달은 오랫동안 수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하얀 쪽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 달로 방아쇠를 당긴다는 토끼, 강강술래를 돌며 소원을 비는 풍습, 해와 달이 된 남매, 화개가 먹고 차가워 토한 달, 연어랑과 새오녀, 메밀밭에 소금을 뿌린 듯한 흐뭇한 달빛.
천문학자들은 별을 보지 않는 심채경 문학동네 천문학자 행성 과학자 심채경 경희대학교 우주대와 우주탐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치고 박사 후 연구원, 학술연구 교수로 신분을 바꾸며 20여 년간 목성과 토성과 혜성과 타이탄과 별 사이와 달과 수성을 돌아다녔다. 현재는 한국천문연구원으로 옮겨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19년 <네이처>가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미래 달 과학을 이끌 차세대 과학자로 지목했다.
천문학자들이 전문지식을 탐구하며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시간에 심채경 작가는 몇 계절이 지나는 동안 산문을 쓰는 데 공을 들였다.별이나 은하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러운 대화에 끼워 넣어 궁금했던 내용을 하나씩 풀어낸다. 아주 작은 것을 계기로 품게 된 과학자의 꿈 이야기부터 하나하나 재미있고 즐겁게 이야기한다.
이처럼 재미있는 천문학 이야기를 단 한 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책 고집 강의로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와 <코스모스>의 작가 칼 세이건, 그리고 아내 앤드루얀과 절친 천문학 박사 이명현 씨의 강의였다.사실 우주와 코스모스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칼 세이건과 앤드류 양의 주변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비밀이다.
이지유 천문학자의 강의로 들은 보현산 천문대의 광학망원경을 이 책으로 읽으면 친숙해졌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떠올리며 마음으로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대학원생 때 보현산 천문대에 올라가 ‘별빛마을’에 가서 산책을 하던 이야기를 가만히 상상해 본다.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별떼를 시골에서도 깊은 산속에서는 쏟아붓는 느낌일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으로 보는 별 탐사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관측과 분석 측면이겠지만 한 번쯤 우주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신기할 것이다.
달과 별이 어둠을 책임지고 있다면 <어린왕자>처럼 해가 지는 광경도 놓치기 아까운 일이다. 하루 끝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세상의 모든 색을 여기저기 헤쳐놓은 듯 강렬한 빨강이었지만 황홀한 황금빛으로 물드는 하늘.노을을 감상하는 어린왕자가 되는 이야기와 함께 해가 지는 방향과 소행성이 자전하는 방향에 대해 살며시 던지는 작가의 설명에 잠시 보조를 맞추게 된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책 제목이 궁금했어.전혀 모르는 천문학자가 들려주는 별과 우주 이야기가 그렇다고 별로 흥미로웠던 것은 아니다.나는 여전히 과학이나 우주 천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흥미로운 책도 아니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가지들로 들려주는 에피소드에 더욱 눈빛이 빛났다는 진심을 털어놓자 작가님께 조금 미안하게 된다.
예전에는 꿈을 쓰는 빈칸에 과학자들도 꽤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별로 인기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 자신을 닮은 사소한 에세이를 쓰는 과학자 한 명을 만난 게 인상적이다.별을 보지 않는 천문학자들은 무엇을 보고 이과형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평범하지만 심상치 않은 일상에 대해 조용히 들려준다.천문학도 문학이기 때문에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으면 시인이 별을 볼 것이다, 각자 사랑하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