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이자 성범죄자인 정준영의 성공한 덕후로 방송에 출연한 과거 오세영 감독. 진짜 성공이었다.”그때 나는 미쳐있었다, 어느날 형이 범죄자가 되었다”
한때 성공한 덕후였던 오세영 감독이 내뱉은 자조 섞인 고백이다. 그는 과거 가수 정준영을 열렬히 좋아해 팬사인회 참석은 물론 방송 출연까지 했지만, 지금은 그토록 좋아했던 OPPA가 성범죄자로 전락해 교도소에서 징역 생활 중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실패한 덕후’일 텐데 감독으로서 오세영의 행보는 성공에 가깝다. 그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영화 ‘성덕’은 SNS로 알려지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 경쟁 부문에 초청되는 쾌거도 이뤘다. 9월 28일 개봉한 성덕 감상 소감? 성덕은 관객들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성덕> 포스터 그도 그럴 리가 인터뷰를 하려고 마주한 오세영 감독에게 나도 모르게 아이돌 그룹 빅뱅을 좋아했던 ‘웃기는 슬픈’ 기억을 자꾸만 말하고 있었다. 때는 9월 1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영화사 오드(AUD) 사무실에서였다.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우상으로서 스타란 내 현생을 더 잘 살고 싶어지는 존재다. 부끄럽지 않은 팬이 되고 싶은 마음이랄까. 단지 스타와 팬 관계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게 왜 천둥이야. 부끄럽게 만든 주체가 내가 아니라 그들이 됐다. 그들은 나를 망신시켰다. 그것도 몇 번이나.
동경의 대상에서 범죄자로 전락한 빅뱅 멤버들. 그들은 이제 나에게 옛 OPPA일 뿐이다. TV에 범죄자로 등장한 이들은 과연 내가 좋아했던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마초에 성매매와 성폭력 가해자로 개입한 버닝썬 게이트까지. 짜릿한 배신감이 밀려와 그렇게 ‘탈곡’했다. 아시다시피 탈덕이란 어떤 분야나 사람을 열심히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느꼈다. 이들이 가해 대상으로 삼은 피해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좋아했을 뿐 그 범죄에 동조한 것 같았다. 강렬한 분노도 느꼈다. 여성 팬들로부터 엄청난 돈을 벌어놓고 그 돈으로 여성을 착취하는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다니. 당연히 지금은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가끔 생각나는 것은 내 학창 시절이 빅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게 된 시간은 그 대상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보내준 건 바로 내 학창시절이었어.
<성덕> 오세영 감독은 정준영 재판 방청을 위해 인생 처음으로 법원을 찾기도 했다.성덕은 팬들의 이런 마음을 대변하는 영화다. 오세영 감독은 자신처럼 갑자기 범죄자의 팬이 된 친구들을 만나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재치 있게 카메라에 담았다. 그 과정을 따라가면 팬들이 복합적인 고민 속에서 오타활을 한다는 것, 세상의 인식처럼 그렇게 납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패의 경험을 보여주며 공유하는 모습 자체가 위로가 된다. 사랑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괴로워하는 성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말한다. 상처받더라도 오타활을, 사랑하는 것을 멈춰야죠.
다음은 <성덕> 오세영 감독과 씨네플레이가 진행한 인터뷰를 1문 1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가수 정준영을 좋아했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성덕>은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이었다. 나는 정준영 팬이었다. 나는 성공한 덕후였다는 자기 고백 내레이션도 했지만 처음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정확히 어떤 기분이었는지.
지난 2019년 3월 ‘정준영 단톡방’ 사건이 처음 기사화됐을 때 너무 충격이 커 감정 정리가 안 됐다. 그때는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느 정도 슬픔, 분노가 가라앉으면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 진짜 흑역사구나’ 싶을 무렵 친구나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이런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재밌다며 영화로 만들어 달라고 말해줬다.
그때도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영화화될까’ 싶었지만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팬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 궁금했다.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돌아섰다면 그들은 어떤 오해가 있을 것이다. 친구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어떻게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어떻게 계속 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영화를 만들게 된 시작이었다.
제작기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총 2년 반 정도?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 사건이 일어난 게 2019년 3월이었는데 당시 ‘기획개발지원사업’이라는 게 있었다. 그걸 알고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고 아마 그해 4, 5월 정도였을 것이다. 결국 영화를 한 컷도 찍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2021년 9월 정도였다. 기획안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산하면 대략 2년 반 정도가 걸린 셈이다.
오세연 감독(출처 씨네플레이 김나영 기자)은 2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사건과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제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어떤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너무 영악하다고 느껴서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 감정을 너무 작게 생각하고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괜찮아졌다고 분명히 생각했지만 갑자기 우울감이 밀려와 충분히 슬퍼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나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 사건을 멀리해야 하고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데 나는 계속 그 안에서 맴돌다 보니 감정적인 후폭풍이 늦게 밀려왔다.
제목이기도 한 ‘성공 덕후’라는 단어에 대한 감정이 어떨지, 제목을 그렇게 처음 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제작하는 동안 그 제목을 정한 처음과 비교해 심리적인 변화는 없었다?
성덕이라는 제목은 큰 고민 없이 정했다. 행복한 시대가 흑역사가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성덕 오세영’이라는 내 앞에 붙는 수식어, 키워드가 나에게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기억이기도 하다. 대학에 와서 만난 친구들에게도 ‘내가 사실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고 즐겁게 했는데 이제는 내가 성공했다는 이유로 좀 더 부끄럽고 화가 나는 감정이 생겼다. 그래서 이 ‘성덕’이라는 의미가 하루아침에 변해버린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세상을 뒤흔드는 것처럼 느껴졌고, 성덕이라는 제목을 처음부터 떠올렸다.
영화를 마칠 때는 이 제목에 내가 오히려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제목을 따라간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영화 제목이 ‘왜 꼭 성공한 덕후여야 하는가’에 대해 자문을 많이 했다. 그 제목을 위해서라도 영화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나는 이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오타활이라는 것은 정말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어느 쪽도 그렇지 않았다. 결국 ‘성덕’이라는 말이 다시 나에게 영광스러운 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오타활을 한다면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성공한 오타활이 되고 싶은 마음. 그런 생각을 이 제목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다.
초반에 종에 적힌 ‘성덕’이라는 단어에서 줌아웃되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나온다. 직접 태봉산 성덕사에 간 것이 재미있었는데, 그런 장소는 어떻게 찾았을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성덕사를 찾은 것은 아니다. 원래는 그냥 이 영화의 머리를 때리는 부분에 종소리를 넣고 싶었어. 말장난을 좋아하는 편이라 종소리 중에서도 ‘성덕대왕’ 신종소리를 넣으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 더 이상 그 종이 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성덕대왕의 신종이 너무 오래되어 문화재로 보존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 종 대신 신라대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성덕대왕의 신종 소리를 녹음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성덕’이라는 말이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인 동시에 어감 때문에 역사적인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않을까. 어차피 ‘성덕대왕’ 신종 소리를 담을 수 없다면 ‘성덕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을 한번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절이면 종도 있을 테니까 거기서 종도 울려. ‘성덕사’라는 절을 찾는 과정에서 초반에는 나도 인터뷰로 인터뷰를 해서 그 장면을 좀 넣어볼까 생각했다. 성덕이었던 사람이 성덕사에서 인터뷰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인터뷰 장면을 넣었다.
영화에 등장한 성덕사를 찾은 것은 부산에 있을 때였다. 부산에서 우리 조연 출가와 성덕사를 검색 중이었는데 마침 창원에 있는 성덕사가 외관이 좋아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우리가 원했던 절의 종소리는 좀 더 웅장하고 분위기 있는 것이었는데 막상 종을 쳐보니 말 그대로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너무 귀엽게. ‘아, 이것도 재밌다’ 이러면서 쓰게 됐어.
(출처 : 오드 AUD) 직접 연출, 촬영, 편집했는데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촬영 때는 내가 미숙한 상태였다. 겸손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중요한 촬영은 아니었지만 SD카드를 가져가지 않아 아예 촬영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고, 어떤 때는 카메라 작동이 서툴러 포커스가 완전히 빗나가기도 했다. 완성된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어쩔 수 없이 들어 있다. 사실 꽤 있어 너무 미숙해서.
그래도 고집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인터뷰는 꼭 픽스 고정샷으로 찍고 싶었다. 우리는 보통 인터뷰라면 인터뷰어가 인터뷰어에게 좀 더 냉정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인터뷰어가 아니었을까.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감정적으로도 서로 너무 동요하고. 그래서 마치 인터뷰하는 게 아니라 우리 둘이 대화하는데 카메라가 눈치를 못 보고 낀 느낌이었다. 제가 감정이 격앙된 상태라 카메라를 들고 핸드헬드로 하면 카메라까지 너무 감정에 휘둘릴 것 같았다. 카메라를 고정해 두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편집에 관해서는 기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던 감독들이 참신하다고 생각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묻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웃음) 내가 다큐멘터리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기존의 편집방식을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요즘 말하는 MZ세대라서 새로운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 가지 생각한 건 편집하면서 끝말잇기를 하는 줄 알았어.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가볍고 장난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에게는 <성덕>이 기행문처럼 느껴지는 영화이고, 실제로 촬영한 순서도 중요하지만 감정적으로 진행되는 연결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인터뷰 분량이 너무 많아서 조금 지루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정준영 굿즈를 장례식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열렬히 좋아했던 스타가 TV에서 범죄자로 등장했을 때 처음에는 상심이 컸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이 상처받은 마음을 해소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 것 같은데 실제로 그랬을까?
너무나 말씀하신 대로였다. 사실 이 영화를 어느 정도 만들고 나서 생각한 게 인터뷰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이 사람들과 대화하는 목적이 제가 듣고 싶은 얘기가 있고 그걸 듣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저는 사실 그것보다는 이런 사정, 경험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굉장히 위로가 됐다고 느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파악해 나갔다. 감정적으로 많이 정화됐어. 나쁘게 생각한 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나에게는 치유의 과정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사람을 좋아했던 것이 부끄럽고 후회하는 감정이 컸다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수록 우리가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것 자체를 욕할 수는 없다, 그것을 후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 모든 사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팬들이 남아 있다. 급기야 박근혜 석방 시위를 계속하는 서울역 앞 태극기부대 박사모(박근혜 사랑하는 모임)를 찾기도 했다. 박근혜가 ‘최애’였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와 여전히 정준영 팬으로 남은 사람들 사이에서 겹친 무언가를 찾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
느낀 게 너무 많아.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나는 나 자신을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촬영 초기에도 저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었고 제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사실 제가 모른 척하고 싶었던 제 마음을 계속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인터뷰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했다. 팬이어서 충격은 받았지만 놀라지 않았다.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우리도 그 사건이 너무 무거워서 상처받고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 정말 마음속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은근히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걸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사실 내가 나 자신을 별로 잘 아는 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출처: 오드 AUD) 이른바 ‘파순이’, ‘올파’라는 단어로 깎아내리던 여성 팬덤은 문화의 주요 소비자이지만 지금까지 타자화돼 왔다. 요즘 팬들은 페미니즘 문제에 목소리를 내거나 여성혐오 문제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한 명의 오랜 팬으로서 팬덤 문화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는데 어떨까.
예전에는 팬들이 지금처럼 능동적이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어떤 콘텐츠든 행사든 제공되는 만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팬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아이돌뿐만 아니라 이들을 관리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들도 계속해서 다양한 소통 창구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이다. 페미니즘적 발언을 하는 팬들이 생기고 잘못된 행동이 있을 때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자체는 확실히 좋은 현상인 것 같아. 누군가 누군가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는 서로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느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회 문제에 더 나은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고, 단지 연예인보다는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그만큼 영향력을 책임져야 한다는, 다시 말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인지시킴으로써 팬들이 능동적인 팬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산업의 영역에서 보면 돈의 논리에 따라 우리는 이 정도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경향도 없지 않다. 스타와 팬 사이에 갑을 관계가 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 아닌가. 예전에는 스타가 갑인 줄 알았다면 요즘은 팬들이 점점 갑의 위치에 서겠다는 움직임도 느낀다. 돈을 쓰는 소비자라는 이유에서다. 서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넘어 어떤 권리처럼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를 언급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용기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을 텐데 정준영이 이걸 보고 어떤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그분이 내 타깃이나 대상이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고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말하려고 영화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조금 더 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저도 팬이었고 제가 만나는 사람들도 다 팬인데 이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고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장난치는 사람들은 복잡한 감정을 매일 겪으며 산다. 언론에서 다뤄지는 팬덤은 너무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무지하다. 그렇게 납작하게 그려지는 게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팬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말이다. 팬들의 목소리가 담긴 영화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출처: 오드 AUD) 팬 입장에서 나온 영화는 처음이다.
나처럼 되지 말아요.(웃음) 농담이다. 장난을 처음 하게 된 계기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잖아. 다만 감정이 깊어질수록 행복이라는 가장 중요한 감정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오타활을 깊게 하다 보면 어떤 특정 사건, 사고가 없어도 굉장히 피곤하고 힘든 경우가 많이 생긴다. 그 사람이 몰라주는데 오타활을 노동처럼 해야 하는 순간에 현자타임이 온다든가. 내가 훈계를 두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려고 시작한 것.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래.
<성덕>을 보면서 좋아하는 마음이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배신당했지만 그 마음의 소중함은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전반에서 느껴졌다. 요즘은 무슨 성덕인가.
요즘은 내가 오타활을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오타활에서는 별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내 영화 <성덕>이다.(웃음) 정말 어이없지만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전까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개봉을 앞둔 상황이라 마케팅 영역에서 접근하게 된다. 멀리서 보면 영화를 오타활용하고 좁게 보면 <성덕>을 오타활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출처 : 오드 AUD) 이번이 초연출작이다. 향후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예전에는 진지한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호흡이 느린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식으로 뜬구름 잡는 연출을 향한 꿈이 많았는데 요즘은 영화가 가진 ‘유머 감각’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성덕’은 우연히 조금 재미있는 영화가 됐지만 사실 이런 형태의 영화를 만들게 됐을 때 내 안에 괴리감 같은 게 있었다. 원래 진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왜 자꾸 이럴까 생각한 것이다. 그때는 자기 자신을 잘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가 웃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남과 영화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덕>도 굉장히 진지한 영화가 될 거라고 혼자 상상했는데 어쩔 수 없이 두고 웃기는 영화가 됐다.
그동안 살면서 좋아한다고 꼽은 영화를 떠올려봤다. 돌이켜보면 그 영화도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 없이 심각한 상황만 늘어놓는 작품이 아니었다. 한 번씩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가 있었다. 말이 가진 위트라든지 유머. 요즘은 그런 유머감각이 있는 작품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이야기를 떠올릴 때 완전히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보다는 내 안에서 자꾸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가 실제로 한 경험일 수도 있고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떻게 구현될지 자주 상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정준영에게 할 말이 있다면.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이런 상황에 대해 그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건의 진상을 우리가 낱낱이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법원이 내린 판결이 있고 명확한 증거가 존재한다. 거기에 어떤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뭔가 항변하려는 태도를 취한다면 내가 가진 나름대로 좋았던 기억, 애틋한 마음도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나를 굳이 찾지 말아달라는 말도 드린다. 나를 고소하지 마라. 나는 그저 선량한 시민일 뿐이다.(웃음) 오세연 감독과의 인터뷰는 뼛속 깊이 있고 즐거웠다. 많이 웃었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정에 무릎을 칠 때도 많았다. 아무리 농도가 짙은 흙탕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흙덩이는 아래로 가라앉고 위에는 맑은 물만 뜨지 않는다. 이번 인터뷰와 영화 ‘성덕’은 나에게 흙탕물과 분리된 맑은 물을 응시하는 행위였다. 내 우상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부정적 감정이 폭풍처럼 불어닥친 뒤 오타활이라는 행위를 이전보다 진지하고 객관적으로 되새겨보는 시간이었다. 올해 최애작이자 오세영 감독의 데뷔작 ‘성덕’은 지난 9월 28일 개봉한 뒤 극장가를 점령한 텐트폴 영화 중에서도 꿋꿋이 박스오피스 10위권을 지키고 있다. 전 세계에 퍼지는 K-POP과 팬덤 문화는 이제 거대한 산업의 일부가 되었다. 말하자면 성덕은 내 얘기고 감독 얘기고 당신들 얘기다. 오락 한번이라도 한 너 티켓부터 예매하자. 극장을 찾자. 오타활을 하고 받은 현자에게 휘둘리는 당신에게도, 어제 탈덕한 당신에게도, 오타활했던 과거를 이미 흑역사로 규정하고 자조하는 당신에게도 한 줄기 구원의 빛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허프포스트코리아 / 씨네플레이 김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