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가볼만한곳 육영수 생가 사진전시

옥천의 볼거리 옥천육영수 생가, 사진전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곳을 본 한 해이기도 하지만 기록하지 못한 것도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가해지는 요즘 잊기 전에 과거 여행 기록을 해둬야 할 것 같아요. 철 지난 사진을 보니 몇 달 전인데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아요. 옥천 여행 때 육영수 생가 옥천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옥천에 가볼만한 곳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육영수 여사는 어린이를 위한 육영재단을 설립하고 양지회 등 각종 단체를 조직하여 자선봉사 활동을 펼치며 대통령의 훌륭한 내조자이자 한국의 어머니로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점점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육영수 생가 043-730-3417 관람시간: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육영수생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도 119문화재 (육영수 여사생가)

육영수생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향수도 119문화재 (육영수 여사생가)

교동의 집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할 때까지 살았던 가옥으로 흔히 교동의 집으로 불리던 옥천지역 명문가입니다.1600년대부터 삼정승이 살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도 지역 상류 주택의 양식으로 축조되었다고 합니다.1918년 육 여사의 아버지 종관씨가 매입하여 건물 기단을 높여 개축하였고 1969년 원래 모습과는 다른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하여 사용하다가 방치 퇴락하였으며 1999년 철거됩니다. 2002년 4월 26일 이 생가터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안채, 사랑채, 의채, 사당 등의 건물 13동과 부대시설 복원공사가 완료됩니다.

주인 거실에 쓰는 동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자주 하는 건물은 사랑채입니다. 한옥 앞에 놓인 국화화분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네요. 화려한 걸 좋아해요.

▲ 사랑채

▲ 사랑채

툇마루에는 육영사 여사의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흑백사진이라 더 담백하게 표현되었어요. 미사어구는 필요 없는 것이 사진입니다.

젊었을 때가 있죠. 돌이켜보면 모두 젊어요. 가슴 한구석에 회한이라는 감정이 슬금슬금 다가오면 나이를 먹은 것입니다.사진에서 품위와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느낌 그대로입니다.코이도오아이다음은 연못 뒤에 용당사랑 건물이 보입니다. 연못에는 연꽃 모형이 있어 역시 분위기가 화려합니다.사당, 사당, 사당생가 내에 사당이 있었습니다. 내부를 관람할 수는 없지만 조상님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알겠네요.생가 내에 사당이 있었습니다. 내부를 관람할 수는 없지만 조상님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알겠네요.여름에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땅속을 빛처럼 파고 그 위에 시멘트를 씌운 곳은 일종의 석빙고라고 합니다. 반원형으로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입구인데 한옥에서 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위쪽 동윗집도 잠시 둘러볼게요. 특이하게도 뒤에 우물이 두 개나 있었어요.윗집도 잠시 둘러볼게요. 특이하게도 뒤에 우물이 두 개나 있었어요.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공간이 열리는 미로 같은 한옥 공간은 매번 호기심을 자극합니다.정자사당 뒤에는 별도의 담장을 치고 사과나무, 밤, 배나무, 포도, 자두 등 각종 과일을 재배하던 과수원입니다. 안쪽에 배치된 정자는 1칸 규모의 초가집을 이은 형태인데 육영수 여사가 어렸을 때 밤을 줍던 추억의 장소라고 합니다.사당 뒤에는 별도의 담장을 치고 사과나무, 밤, 배나무, 포도, 자두 등 각종 과일을 재배하던 과수원입니다. 안쪽에 배치된 정자는 1칸 규모의 초가집을 이은 형태인데 육영수 여사가 어렸을 때 밤을 줍던 추억의 장소라고 합니다.한쪽에 대나무 숲이 있어서 운치가 있어요. 돌담을 따라 걸으며 가을바람을 잠시 느꼈습니다.한쪽에 대나무 숲이 있어서 운치가 있어요. 돌담을 따라 걸으며 가을바람을 잠시 느꼈습니다.한쪽에 대나무 숲이 있어서 운치가 있어요. 돌담을 따라 걸으며 가을바람을 잠시 느꼈습니다.관람시간은 18:00까지라 한겨울이 아니면 마당에 켜진 달을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건물 중앙의 주요 부분, 몸채.안채는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 출가하기 전까지 생활하던 곳으로 안방에는 어머니 이경림 여사가, 쪽방에는 육역수 여사가, 동쪽 날개집 안사랑은 육종관씨가 주로 거주했다고 합니다. 안방 서쪽에 부엌이 있고 부엌 위쪽에는 안방에서 쓰는 큰 다락이 있습니다.안채는 ‘ㄷ’자 형태의 구조로 몸체는 정면 2칸 안방과 정면 2칸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면은 툇마루이고 마루는 우물가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몸체와 날개를 구분하는 구성은 조선시대 후기반가의 전형적인 공간구성양식 중 하나입니다.안채는 ‘ㄷ’자 형태의 구조로 몸체는 정면 2칸 안방과 정면 2칸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면은 툇마루이고 마루는 우물가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몸체와 날개를 구분하는 구성은 조선시대 후기반가의 전형적인 공간구성양식 중 하나입니다.안채는 ‘ㄷ’자 형태의 구조로 몸체는 정면 2칸 안방과 정면 2칸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면은 툇마루이고 마루는 우물가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몸체와 날개를 구분하는 구성은 조선시대 후기반가의 전형적인 공간구성양식 중 하나입니다.툇마루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육영수 여사의 아버지 육종관씨가 쓰던 것으로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부숴버려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영자방아소나 말의 힘을 이용해 곡식 껍데기를 제거하고 밀을 부수기도 했던 전통 농기구로 화강암으로 만든 원형의 상석(숫돌)과 둥글게 판자 모양의 받침돌(바위), 그리고 나무로 만든 사각형의 방아쇠로 방아쇠로 연결된 상석을 마소가 구부려 돌려 방아쇠를 당기도록 되어 있습니다.소나 말의 힘을 이용해 곡식 껍데기를 제거하고 밀을 부수기도 했던 전통 농기구로 화강암으로 만든 원형의 상석(숫돌)과 둥글게 판자 모양의 받침돌(바위), 그리고 나무로 만든 사각형의 방아쇠로 방아쇠로 연결된 상석을 마소가 구부려 돌려 방아쇠를 당기도록 되어 있습니다.별채, 딴채.아랫채는 ‘ㄱ’자 형태의 구조로 전면에 툇마루가 구성되어 있고 뒷면은 모두 툇마루로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안채 평면 타입을 따르고 있습니다. 정면 2칸의 안대청 서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구성되어 있고, 안대청 동쪽 다리에는 2칸의 온돌방이 있습니다.육영수 여사의 아버지 육종관은 자동차에도 관심이 있어 외국산 승용차를 소유하고 4대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는 차고가 있었다고 합니다.육영수생가 앞의 연꽃밭입니다. 10월 초에 문화재 야행 야간 체험 행사가 열렸는데 지금은 철거가 한창이네요.육영수생가 앞의 연꽃밭입니다. 10월 초에 문화재 야행 야간 체험 행사가 열렸는데 지금은 철거가 한창이네요.육영수생가 앞의 연꽃밭입니다. 10월 초에 문화재 야행 야간 체험 행사가 열렸는데 지금은 철거가 한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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