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2학기 과학은 정말 재구성하고 싶은 시간이 많다. 그리고 적절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것도 초등학교 교사의 전문성이 아닐까 싶다.
<4단원. 물체와 운동> 적용 다음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우리 학교 안내지도 만들기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이용해 위치, 이동거리를 파악하고 학교 내 주요 장소와 이동 경로를 조별 지도하는 것이 본래 시간이다. 구간별 이동거리, 이동시간을 찾아 지도 위에 속력까지 표현하면 완성이다.
그런데 사실 이 시간대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4단원에서 GPS를 이미 활용한 전적이 있다. 실험관찰본에 ‘학생 집에서 학교까지 오는 거리와 시간을 지도 프로그램을 활용해 써보기’ 활동이 전 차시에 있었다. 또 GPS를 활용한 주요 건물 그리기, 건물 간 이동 거리와 속력을 구하는 것이 <물체의 운동> 단원 빅 아이디와 연계될지도 불투명하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악화로 그룹 학습, 학교 내 이동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해당 시간대가 부적절해 보였다.
위와 같은 이유 등으로 시간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어떻게 적합한 활동을 만들어낼지 고민하던 중 그 다음 페이지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거다…! 실생활과의 연계를 높이기 위해 자율주행차를 주제로 설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단축된 수업시간인 30분간 하기에 적합한 것을 고민했지만 결국 국어교과 토론과 연계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실제 2016~2018년 자율주행자동차 도로주행 테스트 도중 사망 사건이 있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으니 아이들에게 이것도 전해달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학부 시절 배운 딜레마 토론까지 합쳐 과학+도덕+국어교과 간 연계를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의미있는 수업이 될 것 같아 바로 자료조사에 들어가 수업을 만들었다.
교통사고 전적이 있는 학생에게는 트리거가 되어 본의 아니게 학생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우리 학년에는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학생이나 학생의 가족이 없는 것 같았다. 내 게시글을 보고 수업을 참고하고자 할 때 이런 트리거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관련 학생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상황이 가상 상황이라고 말해주고 혹시 불편하고 힘든 학생이 있다면 꼭 교사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해보자.
ppt 템플레이트는 참 선생님의 콘텐츠 스쿨에서 내려받았다. 학교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동기 유발로는 ‘미래를 타게 될 자동차’를 떠올리게 하며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의 도래를 암시했다. 최근 자동차도 자율주행 모드가 장착됐고 학생들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학습목표와 학습순서는 요즘 꼭 제시하고 있다. 수업에 대한 로드맵을 미리 제시하여 수업 흐름 파악에 도움을 준다.
먼저 아이들이 딜레마라는 단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딜레마’라는 말의 의미부터 지적했다. 아이들은 사전적 정의를 듣고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요즘 많이 하는 밸런스 게임과 비슷하다고 말해주니 이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밸런스 게임 : ex. 월 300만원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vs 월 500만원에 직장에 다닌다.)
전통적 딜레마인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트롤리는 광차다. 광산에서 석탄, 물건 등을 운반할 때 쓰는 차다. 그냥 차를 보내면 a쪽으로 가서 5명을 치게 되는데 의도적으로 레버를 돌리면 b로 가서 1명을 치게 된다.
대부분의 학생은 5명보다는 1명을 희생하는 것이 낫다고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 한 명이 학생의 가족이라고 가정할 때는 5명을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거수로 도덕적 결정을 시킨 뒤 상반된 입장의 벤담과 칸트의 말을 보여주며 당신이 어느 쪽으로 손을 들어도 당신의 의견은 모두 지지된다. 이처럼 똑똑한 사람들도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라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장려했다. 칸트와 벤덤을 들어봤다는 학생도 있었으니까 요즘 애들은 정말 똑똑하구나라고 느꼈다.
그 다음에는 트롤리 딜레마를 자율주행차에 대입해 상황을 해결해 나갔다. 시속 70km로 달리는 자율주행자동차로 브레이크가 고장나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기껏 운전대를 돌리는 것이라고 사전 설명했다. 각각의 딜레마 상황에서 학생들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선택해 손을 들어야 했다. 학생들이 선택을 꺼리거나 상황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선택을 하지 않고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지도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을 학생들과 진행했다. 우선 보행자 우선/탑승자 우선 중 어느 편을 들고 싶은지 거수해 학생 수를 파악했다. 그 다음에 한 명씩 그 이유를 말하게 했다. 토론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지난번 도로교통안전을 가르쳤더니 에어백, 안전벨트 등 안전장비를 잘 이해한 것 같았다. 시속 70㎞일 때 사고가 났을 때 사망 확률이 매우 높다는 수업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회사 이미지에 도움이 되려면 상대적으로 다수의 보행자를 위한 모션을 취해야 한다는 논리도 좋았다. 반면 차량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도 이에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곳 클래스에서도 에어백, 안전벨트 등이 언급됐다. 그리고 여느 운전자보다는 보행자가 사고 현장에 많을 것이라는 추측도 등장했다. 그렇게 좋은 논거는 아니었지만 일단 써봤어. 그러면서 한 학생은 자신은 면허를 따지 않고 차도 운전하지 않기 때문에 보행자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콜버그 2단계적인… 그런 댓글이었어 반면 보행자는 도망쳐 몸을 피하기 쉽지만 탑승자는 차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논리도 있었다. 또 자율주행차가 ‘인도’로 인식할 수 있는 곳에 있는 게 보행자의 의무라는 의견도 존재했다.
수업이 끝나고 사진으로 남겨두려면 앞에 와서 자신들도 찍어달라는 아이들. 그들 덕분에 웃었다.
전반적으로 나온 의견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5학년 2학기 국어에 토론이 있어서인지 나름 논리적으로 논거를 펼치는 학생들이 많아 보였다.
마지막으로는 자율주행차 사망사고 소개와 이에 대한 에릭 요나트의 발언에 대한 소개를 진행했다. 오늘 수업 주제로 다룬 내용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근처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학생들도 더욱 진지하게 표정이 바뀌는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나도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일인 만큼 우리 모두가 이런 딜레마에 대해 신경 써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번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생명윤리, 자동차의 속도와 인명사고 영향관계, 토론할 때의 규칙과 예절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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