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 #가황 #나훈콘서트

1947년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난 나훈. 본명은 최홍기로 고소한 사투리의 경상도 남자입니다. 2020년 연령 기준으로 73세입니다. 학창시절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서 고향 뒷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자주 쳤다고 하는데, 나훈아의 지인들은 나훈아가 악기를 다루는 데 능숙하고 그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매우 높다고 말했습니다. 보기에는 완전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인데도 감수성 넘치는 피아노를 좋아했대요. 1965년 형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서라벌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오아시스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천리길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이때부터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1965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이에요. 자신만의 독특한 윤기나는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8년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대박을 터뜨렸고 1970년대에는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가 되었습니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에 가요계를 장악하고 서로 경쟁을 벌여 보통의 남진이나 나훈아와 가수왕상을 수상했습니다.하지만 실제 방송국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1위와 함께 가수왕상을 받았고, 나훈아는 주로 2위를 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것도 좀 의외의 기록이네요. 나훈아는 남진과 함께 경쟁하면서 그 시기 침체된 대중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대중가요계의 활성화를 이끌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나훈아가 주요 히트곡을 동시에 발표하고 남진이 발표한 노래와 동시에 인기를 끌면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영화를 보면 남진, 나훈, 누가 더 인기가 있는지 다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정말 두 분 다 전설적인 가수예요. 나훈아는 남진과 달리 거의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를 선곡했고, 당시 무대에서 다양한 포즈와 곡기창법으로 트로트를 불러 중년층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인기를 알 수 있는 것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초대받았지만,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사람에게만 노래하겠다고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전성기를 누비던 나훈아는 1972년 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던 중 한 남성이 병 파편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몇 달째 입원해 있었대요. 소식을 들은 나훈아 팬들은 남진의 팬들이 나훈아에게 상처를 줬다는 소문을 믿고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사실을 부인하면서 루머는 일단락됐습니다. 이후 나훈아는 건강을 회복한 후 1973년 비밀리에 공군에 입대하여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 이숙희와 결혼해 제대를 1년 앞둔 1975년 이혼했습니다. 전설의 나훈이도 결혼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1976년 나훈아는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화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배우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해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해 심수봉이 남산에 위치해 있던 도쿄호텔 스카이 라운지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그 실력에 감탄 나훈아는 심수봉에게 본명 최홍기로 쓴 자작곡 ‘여자라서’를 주면서 가수 데뷔에 힘써 주었습니다. 그리고 1977년에 ‘애정이 꽃피던 시절’이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1974년에 작곡가 박성규가 가수 방주연에게 청혼해준 가사 없이 멜로디만 주고 방주연이 작사하여 발표한 ‘생각해보세요’라는 곡이 원곡이었는데, 방주연이 청혼을 거절하자 박성규는 방주에게 건넨 악보를 다시 가져와 가사를 새로 만들어 3년 후인 1977년에 나훈아에게 전달했고, 이후 ‘애정이 꽃피던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나훈아와 김지미는 김지미의 고향인 대전에서 신혼집을 마련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던 나훈아는 1981년 ‘대동강 편지’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복귀했고,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으며 1982년 ‘옮긴 왜 울어’를 발표해 다시 대중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가요계 복귀로 인해 김지미와 사이가 나빠졌고 1982년 김지미와 이혼했고 이듬해 가수 출신 정수경과 결혼 후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1984년 조용필 다음으로 일본에 진출하여 데이지 크레코드와의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나훈아는 스크린보다 실물이 더 인기였어요. 1980년대 후반에는 방송에 많이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훈아의 공연은 관객이 매우 많았습니다. 인기 폭발이었어요. 방송에서 나훈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명절 때밖에 없었어요.홍보 마케팅에 집중하는 현대 가수들은 위험할 수 있는 은둔 활동이라는 희소가치 있는 그의 공연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그의 존재감은 전설로 상승했습니다.또 주로 서정적이고 슬픈 로맨틱한 분위기의 자작곡을 불렀는데, ‘갈무리’, ‘영원히’, ‘내 인생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 등이 대표작입니다. 나훈아의 자작곡 중 1987년에 발표한 ‘말벌’은 발표 당시 큰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2000년에 강진이 리메이크해서 발표했는데 역시 발표 직후에도 인기가 없었어요. 하지만 영화 덕분입니다. 2006년 조인성 주연의 ‘비열한 거리’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조인성이 노래방에서 ‘말벌’을 불러 이 노래의 인기가 급상승합니다. 그리고 kbs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서 이승기가 극중 엄마를 위로하는 곡으로 ‘말벌’을 불렀는데, 이 장면이 등장하면서 다시 ‘말벌’이 엄청난 인기가 상승하게 되었고, 2007년 9월 20일 방송된 kbs 뮤직뱅크에서 강진이 1위를 차지하여 ‘말벌’은 발표한 지 20년 후에야 전 국민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나훈아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시대를 바꾸는 끊임없는 히트곡 양산과 함께 작곡과 작사 능력으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0년대 초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게 됩니다.데뷔부터 현재까지 정규 앨범 19장을 포함한 200여 개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나훈아가 직접 작사하거나 작곡한 노래는 800곡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07년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예정됐던 콘서트가 갑자기 취소되면서 2006년 순회 콘서트가 나훈아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고, 이후 나훈아는 가요계에서 잠정 은퇴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남자의 인생’을 발표하고 11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했습니다. 그 후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다가 코로나19로 kbs 추석 특집으로 2020 추석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언택트 공연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73세임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전설적인 가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출처 : YouTube 물음표 제거반